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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Apr 11. 2021

안녕, 사하라


간밤에 1박 2일로 사막 투어를 다녀온 야니스와 마테오, 라파엘의 기분이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실망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하룻밤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있어 사막 중심부로 깊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인지, 우리가 머물렀던 곳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모래벌판에서 밤을 지새운 모양이었다. 게다가 세 친구를 태우고 사막을 횡단한 낙타의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혹사당하는 낙타 위에 앉아있는 마음이 꺼림칙해 차라리 자동차를 탈 걸 후회했다고 한다.

      

태국을 여행한 적이 있는 라파엘과 야니스는 태국의 관광용 코끼리와 모로코 낙타의 이미지가 결부된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태국의 관광용 코끼리들은 사람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탓에 충분히 자거나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힘에 부친 코끼리들이 비틀대기라도 할라치면 조련사들이 뾰족한 쇠꼬챙이로 살을 찌르기 때문에 일을 멈출 수가 없다. 태국의 코끼리가 혹사당하는 실상을 잘 알고 있던 야니스와 라파엘은 낙타를 보며 괴로웠던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마을 중앙에서 쉬고 있던 낙타들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했던 낙타들은 결국 일을 벌였다. 사막 투어를 운영하는 모로코 사람들은 야영 시 낙타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다리를 접어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 놓는데, 세 친구의 투어 도중 가이드가 잠이 든 틈을 타 낙타들이 사라진 것이다. 끈을 풀고 사막 깊숙한 곳으로 도망을 친 세 마리의 낙타 중 두 마리만 회수할 수 있었다. 낙타가 도망간 상황을 수습하는 어지러운 분위기가 이어진 탓에, 결국 투어는 엉망이 되었다.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겨우 투어 비용을 마련한 마테오는, 간밤에 일어난 일에 실망한 나머지 평소의 쾌활함을 꽁꽁 감춰 버렸다. 나처럼 아주 적은 비용으로 여행하고 있던 마테오는, 비용 문제로 아흐마드와 협상을 하다가 언쟁을 벌일 정도로 투어를 간절히 원했다. 설전 끝에 겨우 본인의 예산 범위에 맞는 선으로 아흐마드를 설득해낸 마테오는 누구보다 기대에 부풀었다. 그와 같은 기대에 미치기는커녕 엉망이 되어버린 투어에서 돌아온 마테오의 마음이 좋았을 리 없다.     



“우리가 머무는 곳과 비슷하지만 위치만 다른 곳으로 이동해 하룻밤 묵고 온 느낌이야. 새로운 게 전혀 없었어. 식사량도 무척 적었고. 이 형편없는 투어에 내 돈을 낭비한 게 너무 후회스럽다.”     



집 뒤 사막으로 샌드보드를 타러 나왔다.



투어에 다녀온 이래 매사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마테오를 보다 못한 나머지, 야니스가 모래 언덕으로 보드를 타러 가자고 제안했다. 아흐마드에게서 샌드보드를 빌리고선, 끝끝내 거절하는 마테오를 억지로 끌다시피 하여 사막으로 들어갔다. 우울한 기분에 외출마저 꺼렸던 마테오는 나와서도 표정을 풀지 않고 있다가, 내가 샌드보드 위에 올라서는 걸 망설이고 있는 걸 보자 웃으며 말을 건넸다.     



“용감한 수가 웬일로 도전하지 않지? 빨리 타 봐. 내가 도와줄게.”     



마테오는 내 발을 보드 위에 단단히 고정해 주고선, 내가 모래 언덕 밑으로 잘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었다. 지나가 버린 투어 생각은 잊어버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원래대로 돌아온 마테오의 모습에 기쁜 나머지, 나는 평소보다 더 과한 몸짓으로 놀이에 동참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기대와는 달리 샌드보드는 부드럽게 미끄러지기는커녕 모래 위에 고정돼 멈춰 버리거나 매우 느리게 쓸려 내려갔다. 차라리 썰매를 타는 것처럼 앉아서 손으로 밀고 내려가는 편이 나았다.      


친구들보다 덩치가 작은 나는 비교적 잘 쓸려 내려갔으나, 샌드보드를 타는 것보다도 맨몸으로 모래 언덕을 데굴데굴 굴러가는 편이 훨씬 재미있었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사막의 모래 위에서는 아무리 굴러대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다이빙하듯 펄쩍 뛰어내려도, 모래 언덕은 온 팔을 벌려 부드럽게 나를 감싸며 다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샌드보드를 타고 있는 마테오 / 사막 개와 놀고 있는 라파엘



아흐마드의 집에서 데려온 야생 개들은 우리가 모래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갈 때마다 같이 구르곤 했는데, 밑바닥에 도착할 때가 되면 컹컹대며 달려와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친구들은 쫓아오는 개들을 피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비틀대며 달리는 내 모습을 보고선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마테오 역시 밝게 웃으며 몇 번이고 언덕 아래로 몸을 내던졌다. 기분이 많이 나아진 것처럼 보여 다행이었다.          



같이 구르다 지친 사막 개들은 아예 언덕 아래쪽에서 대기하면서, 우리가 굴러 내려갈 때마다 쫓아오는 놀이를 했다.



세 친구가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고민이 깊어졌다. 일정상 일주일 후면 모로코를 떠야 하는데, 이대로 아흐마드의 집에 머물지 또는 다른 도시로 이동할지 여부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도시로 이동하더라도 돈이 없는 건 매한가지여서 노동과 숙식을 교환해야 하는데, 급하게 구하려 드니 쉽게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심란한 마음에 야니스에게 슬쩍 말을 꺼내니 그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너도 우리와 같이 아틀라스 산에 가자!”     



친구들이 마테오를 주축으로 하여 아틀라스(Atlas) 산맥 꼭대기에 오를 계획을 품고 있는 건 알았으나, 시간이 꽤 소요될 듯하여 따라나설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던 상태였다. 그럼에도 막상 야니스의 제안을 들으니 솔깃했다.     



“나 일주일 후면 모로코에서 떠나야 하는데 너희와 함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꼭대기에 오르는 건 이틀 동안 바짝 걸으면 된대.”     



듣고 보니 일주일 동안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일정이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내내 홀로 여행하다가 사하라 사막의 아흐마드 집에서 한데 모이게 된 우리는, 이제 한 팀을 이뤄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아틀라스 산맥에 오르게 될 터였다.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맥이라는 타이틀은 나를 기죽이기는커녕 어떻게든 꼭대기에 올라 보겠다는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다.      



아흐마드네 집에서의 마지막 만찬, 낙타고기 요리



야니스와 마테오, 라파엘과 사막에서 실컷 놀고 들어와선 아흐마드 집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들었다. 아흐마드가 마지막 만찬으로 낙타고기를 내어주었다. 다른 종류들의 고기와 구별할 만한 냄새나 느낌은 딱히 없었고, 질겨질 때까지 익힌 소고기 맛이 났다. 낙타고기가 먹고 싶다며 늘 노래를 불렀던 마테오는 기쁜 기색을 띠며 맛을 음미했다.      


아흐마드네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갔다. 때때로 아흐마드가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생각 없이 말을 내뱉어 실망하기도 했지만, 금식을 지켜야 하는 라마단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인 우리를 위해 매일같이 세 끼니를 차려준 게 고마웠다. 사실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 역시 그의 집에 묵으며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 환한 표정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선, 온통 모래투성이인 움막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갖가지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게 무서워 처음에는 발도 제대로 딛지 못했던 움막이 이제는 안락한 잠자리로 느껴졌다.     



어느덧 벌레가 우글거리는 움막이 안락한 잠자리로 느껴지고, 외국인 친구들과 생활하는 게 편해졌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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