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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Jul 30. 2021

카스바에서의 작별


아틀라스 등반을 완수하고선 모두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선 아침을 들고 있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더니, 마테오가 강아지 같은 눈망울을 빛내며 활짝 웃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음 한구석에서 저릿함을 느낀 터라, 마테오의 환한 미소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친구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라케시에서 보았던 풍경



이므릴(Imlil)에서 마라케시(Marrakech)로 돌아온 우리는, 내가 출국할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하며 계획 없이 시내를 거닐었다. 마라케시는 그야말로 엄청난 관광 도시였다. 택시들이 넘쳐나고 호객꾼들이 판을 쳤다. 그동안 머물렀던 마미드(M'hamid)이므릴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우리는 모스크 근처를 배회하다 한 공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야니스와 라파엘은 호스텔에 체크인했으나, 돈이 얼마 남지 않았던 나는 마테오와 함께 카우치서핑(*)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테오의 요청에 흔쾌히 승낙의 의사를 표해 일정을 논의했던 호스트가 돌연 연락 두절이 되는 바람에, 묵을 곳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 카우치서핑: 여행자가 잠잘 수 있는 「소파(couch)」를 「찾아다니는 것(surfing)」을 뜻하는 말. 현지인은 여행자들을 위해 자신의 카우치를 제공하고 여행자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카우치에 머무르는 일종의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



친구들과 잠시 앉아 쉬었던 공원



호스텔에 짐을 푼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갈 곳이 없어진 나와 마테오는 마라케시의 유일한 크리스트교 교회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일단 와 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어떻게 찾아갈지가 문제였다. 배터리도 다 떨어져 가던 차에 데이터도 없어 지도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때, 피부가 매우 까맣고 앳돼 보이는 청년이 말을 걸었다.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호객꾼이었다. 어딜 가든 물고 늘어지는 호객꾼들에 신물이 나 버린 우리는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청년이 빨리 돌아가길 기다렸지만, 청년은 그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마테오가 청년에게 교회의 위치를 묻자 그는 선뜻 데려다준다며 앞장섰다. 혹시나 길을 안내해준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닐까 싶었으나, 그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그저 데려다주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결국, 나와 마테오는 청년을 따라 길을 나섰다. 셋이 나란히 걸어가던 도중 청년은 선뜻 길을 안내하겠다고 나섰던 이유를 말해 주었다.     



“나는 잠비아에서 모로코로 옮겨 왔어. 돈을 벌기 위해서지. 내가 처음에 마라케시에 도착했을 때, 그 어디에도 잘 데가 없지 뭐야. 결국, 아무 데서도 잘 곳을 구하지 못하고 그대로 밤을 지샜어. 아까 너희의 사정을 듣는데 내가 마라케시에 처음 도착했던 날이 떠오르더라고. 너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길을 안내해주겠다고 한 거야.”     



청년의 이야기에 감동한 나와 마테오는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가 나서주지 않았다면, 별다른 안내자나 지도 없이 교회를 찾아가는 게 가능했을지.



마라케시의 구불구불한 골목길



교회에 도착한 우리는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정중히 부탁드렸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여행자입니다. 굉장히 실례라는 건 알지만, 교회 안에서 침낭을 펴고 하룻밤만 묵어도 될까요? 그저 안전하게 몸을 누일 곳만 있으면 됩니다.”     



목사와 관리인은 당황한 눈치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속닥이며 프랑스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교회에는 저분들이 묵을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아요. 내일 아침 식사도 챙겨드려야 하는데, 우리에겐 그럴 만한 여유도 없고요.”     



나와 마테오는 다른 것 필요 없이 침낭을 펼 수 있고 밤을 안전하게 날 수 있는 조그만 공간만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 외에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다. 논의를 마친 사제가 우리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희가 돈을 드릴 테니 호스텔에 가서 묵으셔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한 나와 마테오는 눈만 껌뻑거렸지만, 이내 마테오가 굳건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돈을 바라고 부탁드린 게 아닙니다. 저희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난다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렇게 알고 갈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교회를 나선 마테오는 내게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실 아까 목사님이 우리에게 돈을 주신다고 했을 때, 마음속으로 엄청나게 갈등했어. 이 돈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수아야, 우리는 여행을 하다 돈이 떨어져 하룻밤을 무료로 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던 거지 빌러 다니는 사람들은 아니잖아? 나 잘 말했지?”     



나 역시 마테오와 같은 의견이었다. 교회에서도 거절을 당한 우리는 결국 최후의 보루였던 호스텔로 향했다. 수중에 가진 돈이 전부 떨어진 건 아니었지만, 차후에 예정된 여행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숙박비를 아껴야 했던 게 수포가 되었다. 나와 마테오는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에서 머물기 위해 야니스, 라파엘과는 다른 호스텔에 체크인했다.   

  



사랑해, 얘들아     


모로코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시금 비행기에 올라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낼 작정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 순간, 야니스와 라파엘이 “수! 마테오!” 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나와 마테오가 묵는 호스텔로 들어왔다.


계획 없이 걷다가 마테오의 제안으로 카스바(**) 근처로 갔고, 전망 좋은 카페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슬슬 걱정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남은 돈도 얼마 없을 뿐더러 앞으로의 여정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다음 목적지는 프랑스의 한 목장이었다. 무척 저렴하게 판매된 마드리드-마라케시 왕복 비행기 표를 가지고 있었기에 일단 스페인에 발을 디딘 뒤, 며칠 안에 프랑스 남부로 이동해야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한편,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라 걱정스럽기만 했다.

(**) 카스바(casbah): 아프리카 북부의 아랍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술탄이 있는 성 또는 건물


친구들은 공항까지 약 5km를 걸어가겠다는 날 만류하고선, 택시기사와의 협상을 자처하여 저렴한 가격에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야니스는 내 손에 택시비까지 쥐여 주었다. 돌연 슬픈 마음이 치솟아 조용히 눈물을 흘리니 친구들이 나를 가운데로 밀어 넣고선 숨을 못 쉴 정도로 안아 주었다. 서로 자기 나라에 오면 연락하라며 유난을 떠는 친구들을 보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짐을 택시에 올리고, 다시 한번 친구들을 한 명씩 안으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울음보가 터진 내게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던 마테오는 나를 오래도록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친구들과의 찍은 마지막 사진. 왼쪽부터 나, 라파엘, 마테오, 야니스.

    


“사랑해, 얘들아.”


“우리도 널 사랑해, 수.”     



떠날 때까지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으나, 웃는 낯으로 친구들을 보냈다. 친구들은 내가 떠나기 직전까지도 내 이름을 연호하며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려 보였다. 내내 붙어있던 친구들과 헤어지자니 마음이 허전했지만, 다시 홀로 남겨진 이상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타지에서 돈 없이 씩씩하게 살아남으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터였다.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해 하루를 노숙하는데, 막 헤어진 친구들의 잔상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택시에 타고 나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매직 사하라> 완결.



(용어 해설 출처: 시사상식사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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