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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Sep 22. 2021

나의 독일인 친구


버스에서 푹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어느새 주변은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로 꽉 차 있었다. 그새 독일에 도착한 것이다. 나의 친구 오르페Orphée가 사는 뉘른베르크Nuremberg에 가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에 있는 한 마을에서 환승을 했다. 프랑스를 벗어난 이상, 더는 의사소통이 수월치 않았다. 프레첼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겨우 손가락을 내밀어 빵 하나를 가리켰다. 가게 점원은 익숙하다는 듯이 영어를 말하며 계산해 주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인해 낯설게 느껴졌던 독일, 낯섦을 무릅쓰고 사먹었던 프레첼

 


바이에른주 제2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뉘른베르크 터미널은 인파로 북적였다.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어깨를 톡톡 쳤다. 뒤돌아보니 오르페가 환한 얼굴로 웃음 짓고 있었다.   

   

“독일에 온 걸 환영해!”     


우리는 감격에 겨워 얼싸안았다. 프랑스에서 눈물로 작별한 이후 반년만의 재회였다. 오르페 옆에 서 있던 한 사나이가 이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았다. 더운 날씨에 걸맞게 민소매에 핫팬츠 차림이었다. 이내 오르페가 그의 정체를 밝혔다.

 

“인사해, 우리 아빠 마틴이야!”     


오르페와 마틴은 자주 간다던 카페로 나를 이끌었다. 따뜻한 차와 달콤한 케이크를 앞에 놓고 있으니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오르페뿐만 아니라 마틴 역시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에 통역 없이도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능했다. 오르페는 즐거운 표정으로 나의 모험 이야기를 청했으며, 마틴은 간간이 웃으며 우리의 대화를 경청했다. 이후 오르페와 단둘이 그녀가 사는 마을인 뉘른베르크를 거닐었다.      


“본격적인 마을 구경은 내일부터 시켜줄게. 오늘은 가볍게 근처만 돌아보자.”     


오랜만에 만난 오르페는 여전히 따뜻하고 다정했다. 프랑스에서 함께 자취하는 동안 모든 경험과 고민을 시시콜콜 나눠서인지, 모처럼 만났음에도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우리는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며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느라 정신을 쏙 빼놓은 채 강둑을 걸었다. 진학할 대학원을 물색하며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던 오르페는, 학업 계획이며 영국인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 역시 지금껏 여행해온 이야기나 앞으로의 계획들을 허심탄회하게 풀었다. 오르페가 떠나고 난 뒤 프랑스에서 혼자 지냈던 상황이며 공통으로 아는 친구들의 근황 등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함께 뉘른베르크를 거닐며 보던 풍경



시내 구경을 간단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르페의 부모님인 마틴과 유타가 반가이 맞아 주셨다. 가슴 깊은 곳에서 따뜻한 물결이 일렁였다. 유타는 프랑스어를 능숙히 구사할 수는 없었으나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 나와 소통하려고 애쓰셨고, 내가 있을 때는 온 가족이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배제되지 않게 하려는 지극한 노력이 엿보였다. 어휘력의 부족으로 피치 못하게 독일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오르페가 이를 즉시 프랑스어로 통역해 주었다. 


유타가 내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며 내온 음식은 시금치 라자냐로, 얇고 쫄깃한 밀가루 반죽 사이에 곱게 간 시금치를 켜켜이 쌓아 올린 요리였다. 입맛에 맞는 건 당연할뿐더러, 극진한 대우에 눈물까지 났다. 오르페의 가족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나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한편, 평소 한국에 관해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왔다. 마틴이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물었다.     


“수아 넌 북한에 갈 수 있어? 남한과 북한에 떨어져 사는 가족들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거야?”   

  

아직 남북한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나는 물론이고 이산가족 역시 특별한 기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다고 대답하자 안타까운 탄식이 이어졌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나의 출신국을 알게 된 외국인 친구들의 상당수로부터 남북한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는데, 의외로 알맞은 답변을 해내기가 쉽지 않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어영부영 말하다 보면 내가 지금껏 남북한 간 분단을 당연한 현실로, 굳이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될 상태로 여겼음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탓에, 창피함을 느끼게 된다.)


식사를 마치자, 마틴이 거실 중앙에 흰 커튼을 친 뒤 영사기를 작동시켰다. 식사 도중 밤에 영화를 보자는데 합의를 보아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던 터였다. 오르페가 DVD가 가득 담긴 상자들을 가져왔다. 평소 영화를 자주 즐기는 모양인지 그 개수가 무척 많았다. 우리는 고민하다 한 프랑스 영화('언터쳐블')를 골랐고, 오르페 가족은 나를 배려해 독일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영화 자막을 띄웠다. 프랑스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유타조차, 당신이 불편함을 느낄 게 뻔한 데도 ‘예전에 이미 봤다’며 극구 프랑스어 자막을 고집하셨다. 외국어로 된 대사들을 모조리 이해할 순 없어도, 모두가 둘러앉아 영화의 온기를 공유한다는 건 그 자체로 무척 기쁜 일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오르페와 방으로 들어와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말을 많이 해서 목이 아픈 건 오랜만이었다. 문득 오르페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방에 걸린 달력을 가리켰다. 그녀가 프랑스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을 활용해 손수 만든 달력으로, 월마다 큼직한 사진 한 장씩이 붙어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내가 보르도Bordeaux의 한 대형 아울렛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진이 한 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깜짝 놀라 오르페를 바라보니 그녀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내가 아끼는 사진들로 달력을 만들었어!”     



오르페가 만든 달력. 사진 밑에는 'Les Grands Hommes(아울렛 이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수아'라고 적혀 있다.



이후에는 오르페가 알람을 맞추지 말고 푹 자자고 제안하여, 아무런 걱정 없이 실컷 잤다.    

 

“오르페, 집에 초대해 줘서 고마워.”

“고맙다는 말 하지 않아도 돼. 난 네가 보고 싶었거든.”



프랑스 보르도에서 함께 자취하던 시절, 오르페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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