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실수가 행운으로 이어지는 육아의 세계)
(때로는 실수가 행운으로 이어지는 육아의 세계)
“도대체 언제까지 너를 데려다 줘야 할까?” 아이가 등교할 때마다 입에서 꼭 나가는 한 마디. 학교도 길 두 번만 건너면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면 씩씩한 발걸음으로 학교까지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출근 시간에 맞춰 아이 학교 앞까지 태워다 주었더니 아이는 엄마가 데려다 주는게 아주 당연한 듯하다.
워킹맘인지라, 꼼꼼하게 아이의 등교준비를 체크하지 못하는지라 늘 미안함이 마음 한 켠에 남아있지만, 아이가 굼뜨거나, 이른 시간부터 예약이 있어 매장에 빨리 나가봐야 하는 날에는
조바심에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짜증을 내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나 전생에 무슨 죄 졌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왜 이러고 사니”
아침 예약으로 인해 이른 새벽 출근을 했던 날, 그날따라 늦잠을 잔 나는 잠이 덜 깬 아이와 아이의 책가방만 겨우 챙겨 차 뒷좌석에 싣고 정신없이 출발했다. 매장에 불을 켜고, 주변 청소를 한 후 예약 받은 일들을 하나하나 완료하니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지난 것 같다. 여유를 즐길 겸 커피 한 잔 하기 위해 전기포트 버튼을 누르고 돌아섰다. 눈을 올려 벽시계에서 시간을 확인한 순간. 차 뒷좌석에 누워 있을 아이가 떠올랐다. 용수철 튀 듯 본능적으로 주차된 차를 향해 뛰었다.
“일어나!!”
몸을 웅크리고 아직도 뒷좌석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향해 소리 지른 후 시동을 걸었다.
아..전기포트에 물 올려 뒀는데...손님이 조금 있으면 물건 가지러 올 시간인데...
당황한 나머지 허둥지둥 급한 내 맘과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채 여전히 비몽사몽인 내 딸은 지각 확정.
천천히 가나 빨리 가나 시간 차이는 얼마 없다는 걸 아는데도 마음이 급하다보니 험악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겨우 도착한 학교 앞에서 아이와 하는둥 마는둥 인사를 하고 들여보내는데 뭔가 이상하다. 뭐지? 아주 익숙한데 어색한 이 느낌은 뭘까?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간 아이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아 천천히 뒤돌아섰는데 나도 모르게 문을 향해 다시 휙 돌아섰다. 가방!!! 가방이다!! 가방이 이상하다.
하교 후 집에 온 아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나를 앉혀놓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마 이 가방 말인데 이거 내 유치원 가방이었는데 알고 있어? 여기 써 있잖아 **유치원”
“어머 그랬어?” 미안하고 무안해서 아이에게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그러게 왜 유치원 가방을 책가방 옆에 뒀어? 네 가방은 네가 잘 챙겨야지”
아이는 내 마음을 모르는지 오늘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는다.
유치원 가방 속에는 무늬 색종이가 잔뜩 들어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아이는 학종이부터 시작해 온갖 무늬의 색종이들을 유치원 가방에 보관했었던 것 같다.
아이는 색종이를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함께 종이접기도 하고 하트모양으로 자르기도 하면서 쉬는 시간마다 재미있게 놀았다고 했다. 친구가 없어 등하교도 혼자 하고, 늘 쉬는 시간에도 혼자 노트에 끄적이기만 했는데 가지고 간 색종이 덕분에 친구들과 놀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딸이지만 원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돌아와서 얘기하는 아이가 아니어서 종알종알 흥분상태로 하루 친구들과 종이접기 하며 즐거웠던 마음을 떠들어대는 이 시간이 더욱 감사했다.
중학생 시절,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대외적으로 모임과 일이 많아 늘 바빴던 아빠.
가족보다는 친구들이나 사업이 먼저였던 아빠는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서 우리가 하루를 마치고 잠에 들었을 때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그 날 역시 새벽 귀가를 한 아빠는 내가 등교 준비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내가 서두르는 것을 본 아빠는 출근길에 학교까지 데려다 준다고 천천히 하라며 웃었다.
지난 명절 때 보고 처음 보는 친척처럼 살짝 데면데면한 아빠의 그 말 한마디가 반가웠다. 평소 가방에 많은 짐을 넣어 다니는 나는 오랜만에 학교에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소품과 간식 두 어 개를 더 가방에 넣으며 차에 올라탔다.
“아빠, 어디가요?”
“너네 학교”
“이쪽이 아닌데?”
“엥? 학교 이사갔어?”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아빠. 저 지금 교복 입고 있는데요. 초등학교 졸업한 지 2년 되었는데”
아빠가 내려준 그 곳은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앞이었다. 그제서야 아빠는 룸밀러가 아니라 몸을 돌려 나를 제대로 바라보셨다. 나를 쭉 훑으시더니 물으셨다
“아, 이게 중학교 교복이니?”
도대체 아빠는 나를 초등학교 몇 학년으로 착각 하신 걸까? 초등학교 6년 내내 교복을 입었고, 중학교도 교복을 입고 다녀서인지 교복이 헷갈렸단다.
아빠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그 무심함이 서운하고 미웠다. 하지만 그 감정도 잠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빠는 오전 일정이 있어 중학교 앞까지 데려다주지 못할 것 같으니 택시 타고 가라며 용돈을 주고 떠났다. 차에서 내려 용돈을 세어본 나는 다음날도 아빠가 초등학교 앞으로 데려다 주기를 하늘에 기도했다.
안타깝게도 그 뒤로 나는 매일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게 되었지만 이 에피소드는 어른이 된 지금도 기억할 때마다 참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내가 이 실수로 아빠를 한 번 더 추억하듯 딸도 나를 그리 기억해주면 좋겠다.
엄마의 건망증이 나의 어떤 하루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