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친구 없는 초딩 2학년, 이런 가방 어때요?

(때로는 실수가 행운으로 이어지는 육아의 세계)

by 드디어

친구 없는 초딩 2학년, 이런 가방 어때요?

(때로는 실수가 행운으로 이어지는 육아의 세계)





“도대체 언제까지 너를 데려다 줘야 할까?” 아이가 등교할 때마다 입에서 꼭 나가는 한 마디. 학교도 길 두 번만 건너면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면 씩씩한 발걸음으로 학교까지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출근 시간에 맞춰 아이 학교 앞까지 태워다 주었더니 아이는 엄마가 데려다 주는게 아주 당연한 듯하다.

워킹맘인지라, 꼼꼼하게 아이의 등교준비를 체크하지 못하는지라 늘 미안함이 마음 한 켠에 남아있지만, 아이가 굼뜨거나, 이른 시간부터 예약이 있어 매장에 빨리 나가봐야 하는 날에는

조바심에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짜증을 내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나 전생에 무슨 죄 졌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왜 이러고 사니”

아침 예약으로 인해 이른 새벽 출근을 했던 날, 그날따라 늦잠을 잔 나는 잠이 덜 깬 아이와 아이의 책가방만 겨우 챙겨 차 뒷좌석에 싣고 정신없이 출발했다. 매장에 불을 켜고, 주변 청소를 한 후 예약 받은 일들을 하나하나 완료하니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지난 것 같다. 여유를 즐길 겸 커피 한 잔 하기 위해 전기포트 버튼을 누르고 돌아섰다. 눈을 올려 벽시계에서 시간을 확인한 순간. 차 뒷좌석에 누워 있을 아이가 떠올랐다. 용수철 튀 듯 본능적으로 주차된 차를 향해 뛰었다.


“일어나!!”

몸을 웅크리고 아직도 뒷좌석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향해 소리 지른 후 시동을 걸었다.

아..전기포트에 물 올려 뒀는데...손님이 조금 있으면 물건 가지러 올 시간인데...

당황한 나머지 허둥지둥 급한 내 맘과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채 여전히 비몽사몽인 내 딸은 지각 확정.

천천히 가나 빨리 가나 시간 차이는 얼마 없다는 걸 아는데도 마음이 급하다보니 험악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겨우 도착한 학교 앞에서 아이와 하는둥 마는둥 인사를 하고 들여보내는데 뭔가 이상하다. 뭐지? 아주 익숙한데 어색한 이 느낌은 뭘까?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간 아이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아 천천히 뒤돌아섰는데 나도 모르게 문을 향해 다시 휙 돌아섰다. 가방!!! 가방이다!! 가방이 이상하다.

하교 후 집에 온 아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나를 앉혀놓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마 이 가방 말인데 이거 내 유치원 가방이었는데 알고 있어? 여기 써 있잖아 **유치원”

“어머 그랬어?” 미안하고 무안해서 아이에게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그러게 왜 유치원 가방을 책가방 옆에 뒀어? 네 가방은 네가 잘 챙겨야지”

아이는 내 마음을 모르는지 오늘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는다.

유치원 가방 속에는 무늬 색종이가 잔뜩 들어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아이는 학종이부터 시작해 온갖 무늬의 색종이들을 유치원 가방에 보관했었던 것 같다.

아이는 색종이를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함께 종이접기도 하고 하트모양으로 자르기도 하면서 쉬는 시간마다 재미있게 놀았다고 했다. 친구가 없어 등하교도 혼자 하고, 늘 쉬는 시간에도 혼자 노트에 끄적이기만 했는데 가지고 간 색종이 덕분에 친구들과 놀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딸이지만 원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돌아와서 얘기하는 아이가 아니어서 종알종알 흥분상태로 하루 친구들과 종이접기 하며 즐거웠던 마음을 떠들어대는 이 시간이 더욱 감사했다.

중학생 시절,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대외적으로 모임과 일이 많아 늘 바빴던 아빠.

가족보다는 친구들이나 사업이 먼저였던 아빠는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서 우리가 하루를 마치고 잠에 들었을 때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그 날 역시 새벽 귀가를 한 아빠는 내가 등교 준비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내가 서두르는 것을 본 아빠는 출근길에 학교까지 데려다 준다고 천천히 하라며 웃었다.

지난 명절 때 보고 처음 보는 친척처럼 살짝 데면데면한 아빠의 그 말 한마디가 반가웠다. 평소 가방에 많은 짐을 넣어 다니는 나는 오랜만에 학교에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소품과 간식 두 어 개를 더 가방에 넣으며 차에 올라탔다.

“아빠, 어디가요?”

“너네 학교”

“이쪽이 아닌데?”

“엥? 학교 이사갔어?”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아빠. 저 지금 교복 입고 있는데요. 초등학교 졸업한 지 2년 되었는데”

아빠가 내려준 그 곳은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앞이었다. 그제서야 아빠는 룸밀러가 아니라 몸을 돌려 나를 제대로 바라보셨다. 나를 쭉 훑으시더니 물으셨다

“아, 이게 중학교 교복이니?”

도대체 아빠는 나를 초등학교 몇 학년으로 착각 하신 걸까? 초등학교 6년 내내 교복을 입었고, 중학교도 교복을 입고 다녀서인지 교복이 헷갈렸단다.

아빠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그 무심함이 서운하고 미웠다. 하지만 그 감정도 잠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빠는 오전 일정이 있어 중학교 앞까지 데려다주지 못할 것 같으니 택시 타고 가라며 용돈을 주고 떠났다. 차에서 내려 용돈을 세어본 나는 다음날도 아빠가 초등학교 앞으로 데려다 주기를 하늘에 기도했다.

안타깝게도 그 뒤로 나는 매일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게 되었지만 이 에피소드는 어른이 된 지금도 기억할 때마다 참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내가 이 실수로 아빠를 한 번 더 추억하듯 딸도 나를 그리 기억해주면 좋겠다.

엄마의 건망증이 나의 어떤 하루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고.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4화딸에게 알려주기 싫은 인생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