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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공주 May 26. 2024

정신과 의사 선생님

전환장애를 상담하다(2)




2022년 가을, 미술심리상담소를 나온 후

 현재까지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녔다.


예기치 못한 행운으로 알게 된 병원이었다.


상담을 맡으신 의사 선생님은 '어쩜 저 정도로 진심일까' 싶을 만큼 눈동자가 반짝이고 공감과 조언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조절하셨다.


이 분을 믿어도 될까, 하는 의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덕분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다한 고민들을 망각의 강으로 던져버리고 편안하게,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랑 잘 맞는 상담사는 이렇게 중요하다





정신과



살면서 듣기만 했던 그 이름 정신과. 보통 질 나쁜 욕으로 종종 쓰이는 병원.


많이들 편치 않은 마음으로 간다던데 행운인 건지 나로서는 정신과가 처음인데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정신과가 뭐 어때서요, 아파서 치료받겠다는뎅'



이런 생각이 내게 단단히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런 거라도 단단해서 다행이다).


또한 마음의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기사를 본 적 다.


무엇보다 당시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갑자기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심각한 상태였어라 오히려 사소한 것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초췌한 얼굴로 병원을 방문하고 이름이 불리자 상담실 안으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상담은 구원이었다



"오리공주씨는 전환 증상은 있으나, 주된 건 강박장애예요"



의사 선생님이 단호한 표정을 지으셨. 내가 주절주절 이야기를 쏟은 후였다.



"이제 그만하세요, 됐어요. 숨이 안 쉬어지고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건 저절로 되는 것들인데. 7년이면 충분히 괴롭혔어요. 이제 스스로 그만 괴롭히세요"



살짝 화가 난 듯한 말투. 어설픈 위로와 미적지근한 말만 듣다가 팩트 폭력 한 번 세게 얻어맞은 느낌. 머리에 늘 달라붙어 있던 녀석도 이때만큼은 잠시 떨어지는 듯했다.


터프한 상담이 끝나고 의사 선생님은 내게 맞는 약을 처방해 주셨다. 그러면서 지금 하려고 하는 것들을 '잘' 할 생각으로 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했다. 물론,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된다면서. 대신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키라고 당부하고 마무리 지었다.


난 적잖은 충격에 텅 비어버린 머리와 퉁퉁 부은 눈으로 상담실을 나왔다. 새삼 벅차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만 해도 기분이 좋지만 분명 '전환 증상'이 있다고 확인받아버린 것이다.



증상을 인정받은 느낌에 7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았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첫 상담 이후로 일주일 동안 난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타고 싶다고 생각만  인라인스케이트도 탔다. 잘 탈 생각은 하덜덜 말고 재밌게 느껴지는 만큼, 딱 거기까지만 했다.


혼자서는 '네가 이렇게 한가할 자격이 있어?'라고 속삭이는 녀석 때문에 맘 놓고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불안한 생각이 들면 내 시선을 바로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마음속 짐들이 인라인스케이트의 균형 잡힌 리듬감처럼 차곡차곡 정리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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