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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공주 May 29. 2024

전환장애도 약이 있나요?

녀석의 천적은 약물치료(1)




보통은 병에 걸리면 약을 먹어야 낫는다. 우리가 궁금한 건 녀석에게도 들어먹는 약이 있냐는 것이다.


다행히 있긴 하다. 난 정신과에서 직접 제조한 약을 받아서 먹는 중이다.


그전까지는 약이라는 것은 약국에서 받아오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아서 다소 미심쩍은 마음으로 약물치료를 받았다. 집에 오면 괜한 반항심에 이런 생각도 했다.

 


'이 못생긴 알갱이들을 먹는다고 뭐가 바뀌겠어, 그래봤자 똑같겠지 뭐'

 

 

거친 생각을 반영하기라도 하는 듯, 약 복용 초기에는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건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일단 내 컨디션이 말 그대로 최악이었기 때문에 생명의 기척을 느끼게 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거기의사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약이나 상담의 도움 없이도 괜찮을 때가 오려면 지금까지 아파왔던 기간만큼 치료받아야 해요”

 

 

그러니까 적어도 7년은 병원에 다녀야 한다는 소리. 그날 난 70년은 늙은 듯한 걸음걸이로 상담실을 나왔던 것 같다.

 

아무튼 며칠 약을 복용하고 다시 병원에 갔는데, 다음 방문에는 일주일이, 그다음에는 몇 주가 걸렸다. 약을 처방받는 기간이 약의 양과 함께 점점 늘어난 것이었다.

 

계절이 쏜살같이 바뀌고 어느새 병원에 가는 내 발걸음이 가벼워져 있었다. 약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고 난 수줍은 소녀처럼 약을 흠모하게 됐다. 녀석에게는 청천벽력의 소식이었을 것이다!






자, 그래서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는



약을 먹으면 녀석과 완전히 헤어질 수 있는가?


 

안타깝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답하겠다.


사실 나 같은 경우에는 녀석과 너무 오랫동안 함께한 나머지 녀석이 내 곁에 있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는 게 가능한지 조차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아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완벽해질 수 없다면 완벽하게 나은 모습과 비슷하게 가는 길로 집입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여기까지 왔고 그곳에서 오는 믿음은 조용히 성장해 왔다.


언젠가 증상이 꽤나 괜찮아진  의사 선생님께 이렇게 질문했던 적 있다.

 

 

"선생님. 제 상태가 처음보다는 정말 많이 좋아진 건 알겠는데요, 그게 약 때문인지 상담을 받아서 인지, 아니면 제가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며 아마 복합적일 거라고 답하셨다. 나는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사실 제가 이 약에 의존하게 될 까봐 걱정이 돼요. 나중에 낫고 나서도 약이 없어서 불안하면 어떡하죠?"

 

 

의외로 그는 진저리를 쳤다. 그러한 질문에 많이 대답해 온 말투로 대답하면서.

 

 

"많은 환자 분들이 약에 대해서 걱정하시고 그렇게 말씀하세요. 하지만 오리 씨, 우리가 팔이 부러지면 깁스를 하죠. 깁스를 한 사람들이 팔이 나아서도 깁스를 하고 싶을 까봐 불안해하고 걱정하던 가요? 약도 똑같아요. 약은 깁스와 같은 거예요. 낫기 전까지는 꼭 필요한 거고, 낫게 되면 필요가 없어지죠. 오리 씨가 낫는 순간이 오면 이 약도 필요가 없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고개가 끄덕여지는 논리였다.


마침내 녀석과 떨어져 홀로 설 수 있는 시간에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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