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공주 Jun 02. 2024

전환장애 약의 세 얼굴

녀석의 천적은 약물치료(2)




로라반정, 인데놀정, 파마파록세틴정, 아빌리파이정, 리페리돈정.


이게 뭐냐면, 녀석을 향한 원펀치 투펀치 쓰리강냉이 어퍼컷뚝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먹는 약들의 이름이다.


이번에는 효과와 부작용, 그리고 약을 빼먹었을 때의 증상. 세 가지를 말해고자 한다.



약의 효과



효과는 약의 가짓수만큼 많다. 긴장과 불안을 약화하고 공황, 강박, 우울감을 낮춰준다. 무기력함을 완화해 주기도 한다. 아래 몇 가지 개인적인 효과도 적어봤다.



1. 정신이 말끔하다


수많던 잡념들이 깨끗하게 사라진다. 얼마만의 평온함인가 싶다!


2. 하기 싫은 걸 해도 죽을 정도는 아니다


몸이 가만히 있어주니 살만하다. 하기 싫은 마음만 잘 참으면 된다.


3. 스트레스 강도가 줄어든다


'그럴 수도 있지' 모드가 수월하게 작동해서 신경 쓰이는 일이 덜하다.


4. 의지에 작은 불이 붙는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살아난다. 금방 죽긴 하지만. 그건 녀석이 없을 때도 그랬으니 어쩔 수 없다.


5. 행복함을 느낀다


세상에, 제가 행복을 느껴요.


6. 눈이 덜 피로하다


살랑살랑. 짹짹. 꿈뻑꿈뻑. 멀리 떨어진 허공을 바라보며 때리는 게 가능하다.


7. 사회성이 올라온


왠지 약을 먹으면 친구랑 놀 용기가 생긴다.


8. 회피 성향이 약화된다


하기로 한 건 힘들어도 버텨보자 쪽으로 승기가 기운다.



부작용



부작용이라고 부를 만한 건 한 가지뿐이다


잠이 무진장 많이 왔다.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잤다. 그동안  눈으로 보냈던 밤들을 한꺼번에 아 자는 기분이었다. 깨면 삶이 불편하니까 이참에 모든 에너지를 잠에 맡겼다.


그렇지만 난 원래 잠이 많은 사람이었다. 약에 적응하면 잠의 양도 조금씩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약을 빼먹었을 때 증상



오히려 이게 무섭다


실수로 약을 못 챙겼거나 더 이상 먹을 약이 없어 복용하지 못할 발생한다.


머릿속에 숨어있던 잡념들이 존재를 드러내고 수분이 서서히 말라가며 신경은 잔뜩 예민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증상이 강해지는데 근육은 오그라들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몸은 찬찬히 뒤틀린다(공포영화...?).


쉽게 설명하자면 약 먹기 전, 힘든 몸으로 다시 돌아간 같다는 말씀.


이 때문에 어딜 갈 일이 생기면 약부터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약은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게 만들어주는 지원군이자 힘든 상황에서도 나아가게 도와주는 버팀목이 됐다.


처음부터 약을 먹었다면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연약한 인간인지라 이런 마음이 들기도 지만.


내 경험을 글로 써서 더 나은 방법을 알리고 있는 지금 내가 얼마나 멋진 일을 하는 중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아지고 있는 모습에 감사함을 느끼며. 더 이상 후회 하지 않기로 하면서.

이전 08화 전환장애도 약이 있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