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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쑤우 Jul 05. 2021

뉴욕에서도, IT 세계 공용어.

어디를 가도 들을 수 있다.

 “헬로우~ A, 내 컴퓨터가 지금 서버 연결이 안되는데 와서 좀 봐 줄 수 있어?”

“일단 껐다 켜봐.”

"...내가 이미 3번 껐다 켜 봤어. 안돼!”

“기다려봐. 원격으로 확인 할게. 팝업 창이 뜨면 원격 조정 수락해줘.”


  IT 팀은 항상 바쁘다. 그래서인지 말을 진짜 빨리한다.

컴퓨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전화로 영어를 빨리빨리 얘기하면 못 알아 들을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회사 전화기는 화면에 상대방이 보이는 화상 전화기다. 그렇지만 A의 심드렁한 표정을 보니 서로가 보이는게 다행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회사를 처음 나갔을 때, 나의 선택에 따라 IT 팀 에서 미리 내 노트북과 맥 모니터 등을 세팅 해 주었다. 보통 디자인 부서는 맥과 윈도우 중 선택 할 수 있게 하고, 다른 비지니스 부서는 윈도우 시스템인 델 컴퓨터를 사용하였다. 대부분의 부서가 출장이나 회의 등 이동이 잦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데스크 탑은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가 노트북을 하나씩 지급 받았고, 오피스 각 자리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사무실의 본인 자리에서 일할 때는 노트북과 연결하여 큰 화면을 보며 일 할 수 있게 하고, 회의가 있을 경우 자유롭게 노트북을 가지고 이동하며 그 자리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업무의 효율을 높였다.


 큰 모니터로 화면 전환을 위해서는 노트북을 항상 닫아야 했기 때문에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도 지급받았다. 그래서 가끔 내 컴퓨터가 다른 누군가의 무선 마우스 혹은 키보드를 물고 있어서 업무 진행을 방해했다. 그럴 때는 “오늘은 이것 때문에 일을 쉬겠으니 허락 해줘” 라는 등의 농담을 던지며 다른 사람 키보드와 연결 된 사람이 누구인지, 범인이고 싶지 않았던 범인을 찾는 소소한 웃음을 주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업무에 사용하도록 지급 받은 IT기기에 대해 불만이 없었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자리에 설치 된 맥 모니터가 연결 선이 약간 잘라질까 말까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사용하던 것을 이어 받아서 설치 된 것 같은데 다른 부분은 새 것 같아서 선만 바꾸면 완벽 할 것 같았다.


‘흠, 일단은 선 외에는 다른 기능에는 이상이 없고, 아예 연결이 안되는 것은 아니니 그대로 사용하다 부탁해 봐야겠다. 어차피 IT 팀은 긴급한 일이 아니면 와주지 않으니.’


기회가 왔다.


 컴퓨터 업데이트를 확인 하려고 IT 팀의 멤버 G가 우리 부서를 방문하였다.

그동안은 그의 시니어 A가 우리 담당이었는데, 업무를 분배한 듯 하다.

매번 원격으로만 만나서 A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면 동일인인지 헷갈리는데, G는 처음 보는 것 같다.

그에게 슬쩍 말을 붙였다.

“그런데 내 모니터 선이 잘라지려 하는데 괜찮을까?”


 G가 확인 하더니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곧 본인이 부서에 의논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한다.

아마도 A와 이야기 할 것 같다. 과연 A가 결단을 내려줄까?


 오후에 G가 다시 찾아왔다.

“우리도 새 것으로 바꿔 주고 싶은데, 이제 맥에서 그 모니터가 안 나와.”

“난 선만 바꿔도 되는데?”

“그 모니터는 선과 일체형이라 선이 잘라지면 다 바꿔야 하는 거야.”

“에~, 왜 그렇게 만들었지? 진짜 이상하다”

“그러니까, 그래서 바꾸고 싶으면 이제 델타 모니터를 사용해야 해, 바꿀 꺼야?”


 저 멀리 옆 부서 동료들의 자리에 설치되어 있는 델 모니터를 휙 보았다.

아무래도 선이 더이상 잘라지지 않게 테이프를 감아서라도 계속 내 모니터를 써야겠다.


“일단은 고장날때까지 계속 쓸래. 아직 안 되는 건 아니니까”

“오케이, 또 다른 문제 있어?”


“아, 공용 서버 연결이 자꾸 끊겨. 확인 해 줄 수 있어?”


“음 그건… 껐다 켜봐. 그래도 안되면 그때 연락해~”

“아...오케이”


 그가 돌아 간 뒤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매니저가 내 뒤로 쓰윽 왔다.


“G도 역시 IT 피플”

“어?”

“껐다 켜.”

“푸하하, 한국도 똑같아. 알고 보면 IT 세계의 공용어인가봐!”


 장난끼 가득 얘기하는 매니저에게 큰 웃음으로 동의해줬다.


 결국 모니터는 바꾸지 않았지만 그래도 알아봐 주고 친절히 설명 해 준 그가 고마웠다.

매번 심드렁하게 답해줘서 가끔 나도 모르게 입이 나올 때도 있지만, 나도 매니저도 사실은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다.


 껐다 켜라는 답만 주로 줘서 무심해 보이지만,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는 와서 어떻게든 해결해준다. 그리고 이상하게 껐다 켜면 안 되던 것들이 대부분 잘 되기는 한다.


특히 나는 외국인이라고 배려해줬는지, 소소한 문제도 원격으로 해결을 많이 해 주었다.


아... 다시 서버 연결이 안된다.

어서 껐다 켜 봐야겠다.

G와 만나면 내가 껐다 켜서 잘 해결하고 있다고 우쭐댈 수 있기를!


Photo by Format from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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