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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쑤우 Jul 05. 2021

T 가 사라졌다.

미국 회사의 젠틀한(?) 해고.

 T는 프로덕션 팀이다. 그 팀은 옷을 만드는 공장을 가지고 있는 로컬 혹은 글로벌 벤더들, 소싱 파트너와 브랜드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 하며, 계획 된 디자인에 따라 상품화 될 수 있도록 모든 진행 과정을 조율하고 각 부서의 협업을 돕는다. 딱히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잘 맞는 직업이라고 말 할 수 없지만, 사소한 문제가 큰 사고로 발전 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꼼꼼히 체크 할 수 있어야 한다.


 T는 정말 유쾌하고 활발하다. 성격도 너무 좋아서 일이 많거나 힘든 일이 발생해도 웃으면서 잘 헤쳐 나가는 타입이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깔깔대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에 나도 그녀를 좋아했다.


 그 날도 웃으며 아침인사를 나누었다.


“안녕 T, 오늘 급히 같이 확인해야 할 것이 있는데, 미팅 전에 시간 있을까?”

“당연하지, 조금 후에 봐.”

“응, 이따 봐~”


한참이 지나도 T가 오지 않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듯 하여 십 여분 후에 다시 찾아갔다.

여전히 자리에 없다.


‘어디 간 거지’


매니저에게 T가 자리를 비워서 긴급 이슈에 답을 바로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그가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T 는 이제 찾지 않아도 돼. 그 팀 상사와 얘기해봐.”

“어? 무슨 말이야?”

“그녀는 해고 되었어.”

“오늘 아침 출근 할 때 만났는데??”

매니저가 말 없이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헐…



이틀 전.

 

스트라이프 패브릭이 메모와 함께 전달되었다.

‘스토어에 들어가기 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이미 원단이 완성 되었어. 가능한 그대로 진행 할 수 있게 도와줘.’


 컬러 부서는 컬러만 다룰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패브릭의 전반적인 사항도 확인한다. 원단의 퀄리티, 즉 손으로 만졌을 때의 촉감 등이 문제가 없는지, 프린트의 경우 컬러와 레이아웃이 디자인 한 그대로 만들어 졌는지, 원단의 방향이 틀어지지 않았는지 등등.

스트라이프의 경우에는 간격 확인도 하는데 패브릭의 신축성 때문에 페이퍼 상의 디자인과 완벽히 일치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품화를 위한 여유 간격을 허용한다.


 시간이 없다고 하니 오늘 어떻게든 빨리 완결을 해줘야겠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이 간격의 스트라이프가 디자인 시트에 없다.


“T, 이거 뭔가 잘못 된 것 같아.

이번 시즌에 정한 스트라이프는 간격이 더 넓어야 해. 이 사이즈는 찾을 수 없어”

“앗. 시간이 없는데 어쩔 수 없네”


 원단 업체에 연락했다.

‘전달 주신 스트라이프 원단의 간격이 디자인과 다릅니다. 확인 후 다시 보내주세요.’



하루 전.


업체에서 메일이 왔다.

요청 받은 사항대로 진행했습니다. 첨부 된 메일을 봐주세요.’

첨부 메일은 T가 보낸 것이었다.  1.5 cm 간격의 스트라이프를 0.5 cm로 줄여서 진행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경우, 어디서 상황이 꼬인 것인지, 누구의 책임인지 찾아야하기 때문에 모든 기록을 뒤진다.


디테일은 이러했다.

0.5 cm 로 줄이기로 한 적이 있었으나, 바이어가 마음을 바꿨다. 그런데 T가 너무 바쁜 나머지 정정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보통 상품화 전에 샘플 과정에서 실수가 걸러지는데,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테스트를 모두 생략하고 본 생산에 들어가서 원하지 않았던 스트라이프가 만들어졌다.


 일이 커졌다.

 이 디자인으로 만들고자 계획했던 옷들의 수량이 너무 크다. 정정 요청이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브랜드의 100% 책임이다. 바이어가 화를 꾹꾹 눌러 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T의 면전에서 실수를 비난하거나 직접 화를 내지는 않았다.

'아, 다행히 잘 지나가나보다.'


하지만 T의 자리는 조용히 사라졌다.


 미국에서는 인사과의 호출을 받은 후 해고 되면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없다. 본인의 물건은 동료가 챙겨서 우편으로 보내주거나 직접 전달한다. 아마도 해고 된 사람이 화가 나서 기물을 부순 다거나 회사 정보를 빼 가는 것은 방지하기 위함인 것 같기는 한데, 본인의 가방이나 물건들 조차 스스로 챙겨 갈 수 없다니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해고 된 날은 모두가 마음이 무겁다. 특히 함께 가까이에서 일했던 동료라면 더 우울해진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해고 된 동료들이 금방 또 이직하여 어딘가에서 자기 몫을 다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딘가에서 유쾌하게 일하고 있을 T가 유독 보고 싶어지는 하루다.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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