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을 기르고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회사는 직원 복지를 위해 작은 사내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러가지 체육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혼자서 운동하고 싶은 사람은 가서 헬스 기기를 이용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다. 딱히 다른 팀과 같이 업무를 진행하는 스케줄이 없으면 근무 시간에도 다녀 올 수 있다. 단, 업무시간을 땡땡이 치는 것이 아니라 빠진 만큼 이후에 더 일해야 한다.
난 운동에 소질이 없다.
기숙사에 살 때, 등록금에 체육관 사용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번도 안 가면 돈을 버리는 것 같아서 딱 한번 가 보았다. 처음으로 스테퍼에 올라갔는데 너무 힘들어서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내려왔다. 옆에 외국인 친구는 얼마나 체력이 좋은지 30분 이상을 계속 했다.
오~대단하다.
난 이것저것 사용해 보려 했지만 5분 이상 버틴 기구가 없었다.
같이 간 친구가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바로 내려 올 수가 있어? 옆에 하는 애 보지도 못했어?”
“5분은 했거든, 그리고 원래 서양인이 체력이 더 좋아.”
친구가 말을 잃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며 놀린다.
그만큼 난 운동과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근무 중 운동 하는 것은 한국의 직장에서는 흔한 기회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다.
회사 체육관에는 여러가지 클래스가 있었는데, 그 중 요가 클래스가 제일 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연성 제로에 뻣뻣 하지만 그래도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유사하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팀 매니저가 요가를 좋아해서 같이 다녀오자고 제안해주었다.
“난 몸에 유연성이 없어서 잘 하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
“걱정 하지마,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면 돼”
매니저의 개인 SNS 프로필에 요가 강사의 경험이 있다고 써 놓은 것을 본적이 있다. 굉장히 유연하고 잘 할 것이 틀림없다 생각했다.
요가 클래스는 주 2회 있었는데, 미리 참석 여부를 정하지 않아도 그날 시간이 가능하면 바로 참여 할 수 있었다. 바쁜 날들이 많기 때문에 훨훨 불타는 장작처럼 온 몸을 내던져 오전 일을 마쳤다. 점심은 책상에서 대충 때우기로 하고 요가 클래스에 갔다.
매트나 기타 필요한 도구는 모두 준비되어 있었서, 난 요가복만 챙기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요가 클래스에 다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척 기대 되었다. 시작도 전에 여기서 조금만 연습하면 종종 영화에 나오는 브라이언 파크에서의 요가 이벤트도 바로 참석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붐빌 줄 알았는데 매번 한 클래스에 4~5명 정도만 참석하였다.
요가 강사님이 눈을 감으라고 하신다.
영어로 자세를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설명해 주셨는데, 음… 어떻게 하라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실눈을 뜨고 옆에 자리잡은 매니저를 슬쩍 보았다.
‘오잉’, 매니저의 자세가 어색하다. 앞을 보니 강사님과 다르다.
아무리 봐도 그는 유연성이 제로인 나와 같은 레벨이다.
오히려 내가 매니저보다 아주 조금 더 유연해서, 그가 약간 부끄러운 표정을 보였다.
‘요가 강사 프로필은 어떻게 된 거지...음...’
처음에는 주로 맨 끝 쪽에 자리를 잡아서 옆에 앉은 매니저의 동작만 보고 따라했는데, 양쪽에 사람이 있으면 더 잘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에 계신 강사님의 동작을 보는게 제일 좋지만, 누워서 하는 경우에는 앞이 잘 안보였다.
다음 클래스부터는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옆에 다른 팀 동료 C라는 친구가 앉았다.
C는 같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요가 클래스에서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리를 다쳐서 요가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왔다 했다.
기본 스트레칭을 하는데 나보다 유연하다.
전문가 레벨은 아무래도 C인가보다. 따라해도 될 것 같다.
오늘도 눈을 감고 동작이 시작된다. 마음을 비우고 명상을 하라고 눈을 감는 것인데, 영어 설명만 듣고 동작을 따라 하려니 포즈가 맞는지 모르겠다.
‘나만 다르게 하고 있는 거 아냐?’
마음의 평화가 오지 않아서 명상을 할 수 없다. 눈을 뜨고 C를 슬쩍 보았다.
‘아, 이 동작이었군!’
내 생각에 완벽히 따라했다.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강사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외치셨다.
“C 따라하지마. C도 계속 다 틀리고 있어.”
'아…'
C는 그 시간 이후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왠지 나 때문인 것 같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인간관계는 예상치 못한 일로도 멀어진다.
그래도 이제 강사님이 내가 동작 설명을 잘 못 알아 듣는다는 것을 눈치 채신 것 같다.
갈 때마다 자세를 직접 와서 교정해 주신다.
시즌 준비 중에는 너무 바빠서 못 가는 날이 더 많아서인지 여전히 유연해 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회사 생활에 소소한 활력을 주는 시간이었다.
현실의 나와는 다르지만, 운동까지 잘 하는 프로 워커의 분위기가 폴폴 나는 기분이라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요가 클래스의 해프닝을 동료들과 떠들어 대며 웃게 되는 건 덤이다.
후에 집 근처 핫요가 클래스에 등록해 나가기도 했는데, 뜨거운 공기에 숨이 막혀 쓰러질 뻔만 하고 열심히 안하게 되었다.
역시, 운동은 근무시간에 해야 제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