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쑤우 Jul 03. 2021

잇'츠 런치타임!

나도 이제 수다쟁이!

 난 점심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점심 먹으러 가는 동안 따뜻한 햇빛을 가득 받으면서 광합성도 할 수 있고, 세 끼 중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살이 안 찔 것 같은 즐거움과 포만감 가득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점심 시간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간이다. 한국에서처럼 저녁 회식이 없기 때문에 가끔 부서 전체 런치가 있기는 하지만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친한 동료와 먹고 싶으면 약속을 정해서 나가면 되고, 혼자 먹고 싶으면 자기만의 여유를 즐기다 돌아오면 된다. 밥 먹는 대신 운동을 하고 싶으면 체육관에 다녀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점심 시간이 자유롭다고 해서 1시간 이상 점심 시간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용인 될 수 있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시간은 철저히 지킨다. 다만, 언제 먹을 지는 딱 정해져 있지 않아서 11시에서 2시 사이 중 원하는 때에 스케줄을 조율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업무가 많을 때에는 회의를 하면서 먹거나 자리에 앉아 일을 하며 대충 때우기도 한다.


 미국은 음식을 주문할 때 무엇이든 맞춤형으로 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샌드위치를 시킨다 하면, 무슨 종류의 빵을 할지, 속 재료는 무엇을 넣을지, 고기를 얼마나 익힐지, 소스는 뭘로 할지 등등 개인의 입맛에 맞게 요청 할 수 있다. 계란 프라이를 주문 할 때도, 흰자 혹은 노른자만 원하는지, 어느 정도 익힐 것인지 등 본인의 식성에 맞게 고를 수 있었다. 

 난 음식에 호불호가 크게 없고, 뭐든 맛있게 먹기에 딱히 상세한 맞춤 오더가 필요는 없었지만, 일일이 주문을 기억해서 다르게 만들어 주는 것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혼자 먹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점심시간이지만, 난 동료들과 같이 점심 먹는 날이 많았다.

빠르게 회사를 적응하게 돕고 싶었던 친구가 다른 동료들과의 점심 약속을 많이 잡아 주었기 때문이다.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처음에는 부담이 되었다. 나 이외에는 모두 네이티브 스피커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동안, 어느 타이밍에 내가 대화 속으로 들어가야 할지 시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어제 본 쇼를 얘기한다거나 뭔가 다들 흥미가 있을 만한 일을 겪고 와서 그것들에 대한 수다를 떨고는 했는데, 난 그 쇼를 본 적이 없고, 동료들이 흥미 있어 할 만한 특별한 일이 일상적으로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날도 여러 동료들이 모여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역시 난 말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친구가 자꾸 안절부절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동료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점심 약속을 같이 잡아주고 참여토록 해 주는데, 나는 계속 입을 꾸~욱 다물고 있으니 초조하기도 하고 잘 적응을 못하는 것인가 하는 걱정에 마음이 무거워 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친구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무척 미안해졌다. 이렇게 도와주려고 하는데, 난 계속 입을 떼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을 지. 



‘F 걱정 하지마! 이제 내가 수다쟁이가 되어 볼게!'


맨해튼헨지 같은 소소한 이벤트를 보러가기도 하고 많이 돌아 다니며 재미있는 경험들을 만들었다.

 그 뒤로 재미가 있건 말건, 서툴면 서툰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기로 했다. 아침부터 퇴근 할 때까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사무실 출근해서 메일을 보면서도 재잘재잘. 복도에서 만나는 동료들한테도 계속 근황을 묻고, 그들에게 외모적 변화가 있으면 마구 칭찬도 하고. 이야깃거리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집 밖으로 계속 나갔다. 사람도 많이 만나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며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만들었다.



 말문이 트이니 동료들도 나를 더 편해 했고 가깝게 대했다. 일을 할 때도 커뮤니케이션이 더 부드럽게 되니 업무 분위기도 더 좋아졌다. 점심 시간에 밝아진 친구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 자신 스스로도 더 많은 활동도 하게 되고, 활기 차지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래서인지 미친듯이 바쁜 날은 더 늘어갔지만 회사 생활은 전보다 더 편하고 즐거워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른 동료 자리에 갔다가 우리 팀에서 떠드는 소리가 온 사무실에 다 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헐, 내 목소리도 매일 이렇게 들려?”

“응!” 


 동료가 씨익 웃었다.

조금 부끄러운 표정과 함께 나도 빙긋이 따라 웃고, 자리로 돌아왔다.


“여기서 말하는 소리가 사무실 전체에 다 들리고 있었어!”

“오~” 

우리 팀 모두가 크게 웃었다.

이전 03화 갑이 을이 되는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