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패션 회사 생활의 첫날
인사과와 인터뷰를 마친 후 최종적으로 팀에 합류하기로 결정되었다.
인터뷰를 앞두고 조금 긴장했었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회사에 왜 지원하게 되었는지, 어떤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희망 급여 등에 대해 물었다. 한국에서는 인사과와 만나면 뭔가 어색하고 딱딱한 느낌이 들었는데, 나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인사과 스텝은 매우 친절했고 내 상황을 고려해서 입사일이나 상세 조건들에 대해 유연하게 처리해 주었다. 입사 후에도 잘 적응하고 있는지 만날때마다 물어봐주어서 고마웠다.
OPT 카드는 받았지만 주급을 받으려면 SSN(Social Security Number)이 필요하다. SSN신청을 미리 해 두지 않아서 확실한 발급일로 예상되는 2주 뒤로 출근하기로 결정하였다.
‘인사과 연락 받았어?’ 친구가 궁금했는지 연락이 왔다.
회사 내부에서 진행 상황을 더 잘 알 것 같았는데, 실무 부서와 인사과와의 의사소통 부재는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나 보다.
‘응. 그런데 나 SSN 신청을 이제야 해서 2주 후에 출근하기로 했어. 괜찮아?’
‘오케이, 걱정마. 메일 주소 어떻게 쓰고 싶어? 컴퓨터는 맥? 윈도우? 나는 맥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너가 편하게 쓸 수 있는 시스템으로 고르면 돼’
‘우와~ 내가 정할 수 있어? 나 맥 쓸래.’
평소에 윈도우를 더 많이 사용 했는데, 영화에서 종종 보이는 맥을 사용하는 쿨한 힙스터들을 떠올리며 맥북을 신청해버렸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은근 무거워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으로 잘 가져오지도 않았고, 윈도우와는 다른 맥북 단축키를 몰라서 물어보느라 팀 동료들을 귀찮게 하곤 했다.
어느새 첫 출근날.
배움이라는 명분하에, 실수가 연습이 되고 발판이되는 완충지대인 학교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진짜 외국 사회로 발을 딛는 날이다.
설렘반, 걱정반으로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8:30 AM
보통은 리셉션 데스크를 통해 인사과의 안내를 받아 회사에 대한 소개를 듣고 소속 팀으로 가서 인사를 하게 되는데, 회사 앞에서 친구를 만났다.
“오는데 힘들지 않았어? 팀으로 먼저 가자. 사람들한테 인사하고 내가 HR로 데려다 줄께”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팀에 새로 온 팀원을 소개할께. 당분간은 전체를 같이 하고, 라인 담당은 좀 더 적응 된 후 확정할꺼야”
“안녕, 환영해, 새 스텝이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
“안녕, 안녕, 안녕, 난 J야, 난 M, 난…”
회사 전체를 돌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 반가워”
첫날 아침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회사 생활 초반에는 동료들의 이름과 얼굴이 헷갈리거나 기억하지 못했다. 게다가 다른 팀과 협력해서 하는 일이 많아서 동료들이 나에게 많이 오갔는데 한동안 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느팀에 있는지 몰라서 찾아 헤매거나 인상착의를 설명해서 누군지 알아내야만 했다.
출근 첫날 오전시간은 동료들과의 인사, 인사과와의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각종 세금 및 인사정보를 위한 서류 작성으로 시간이 다 갔다.
12:30 PM
드디어 점심시간. 미국은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해서 혼자 점심을 먹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첫날 점심은 팀원들과 함께 먹었다.
보통 점심시간은 12시에서 2시 사이에 상황에 맞춰서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바쁠때에는 먹을 것을 사다가 책상에서 일을 하면서 먹기도 했지만,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때는 동료들과 같이 나가서 먹고 오거나, 각자 먹을 것을 준비해서 회의 테이블에서 모여앉아 얘기하면서 먹었다.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은근 텃세를 부리는 분위기의 회사도 많다고 했다. 친구중에 한명은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다른 팀원들의 은근한 괴롭힘때문에 다음날 아침이 오는게 너무 싫다고 얘기해서 놀랐던 적도 있는데, 나는 럭키하게도 업무 분위기가 좋은 회사에 다녔다.
무튼 첫날의 점심시간,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네이티브 스피커들 뿐이네. 점심에 무슨 얘기하면서 먹어야하지…’
같은 미국인인데도 학교 친구들과는 달리 묘하게 긴장되며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동료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 본 동료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묻는 질문에 짧은 대답만 하니 불편해한다고 생각 한 것 같다.
동료 한 명이 어제 본 티비 쇼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음은 활발하고 즐겁게 대화에 참여하고 싶지만, 난 그 쇼를 본적이 없다. ‘아... 인터넷 신청할 때 공짜로 보여준다고 한 케이블 채널을 소중히 봐 볼걸 그랬다.’ 결국 가끔 미소를 띄우기는 했지만, 말없이 먹으며 듣기만 했다.
왠지 나뿐만 아니라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두가 이 시간이 어색한 것 같다.
이후로도 한동안 점심이나 소소한 회사 파티 등의 시간에 대화에 잘 참여하지 못하고 주로 듣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을 계기로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동료들이 관심있는 주제이던 아니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재잘재잘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오, 동료들이 더 편하게 나를 대하고 업무 협업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역시 어떤 관계이던지 대화는 중요하다.
1:30 pm
점심시간이라는 한 고비를 넘기고, 오후 근무시간.
팀 매니저로부터 전체적인 조직 체계와 팀의 역할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한국 브랜드와의 미국 브랜드의 가장 큰 차이는 바이어의 역할.
국내 브랜드의 경우 기획부서가 예산을 고려하여 스타일과 수량을 디자이너와 협의하여 조율해 나간다면, 미국 패션 브랜드 바이어의 경우 다른 팀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는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스스로 결정하고 거의 모든 책임을 다 진다. 항상 ‘갑 중의 갑’ 이라며 모두의 부러움을 사지만, 파워가 큰 만큼 책임도 크다.
또 그들은 소싱 컴퍼니와의 비지니스를 통해 글로벌적으로 생산을 관리하는 체계와 업무 툴이 갖춰져있고, 이에 따라 한국 브랜드와 내부 조직의 구성이라던가 역할의 차이가 나타난다.
내가 입사한 회사의 조직은, 브랜드 내의 라인에 따라 나누어진 바이어 팀이 있고, 옷을 만들어 내기 위한 트랜드, 프로덕션, 디자이너, 패브릭&컬러, 그래픽, 테크니컬 디자인 팀, 그리고 전체적인 서포트를 위한 마켓팅, 광고, VMD, 어카운팅팀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서 일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브랜드 자체적으로는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소싱 파트너와 마켓 벤더, 로컬 파트너 등과도 밀접한 비지니스 관계를 유지 하고 있었다. 유기적인 관계속에서 우리팀이 세부적인 일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듣다보니, 앞으로의 나의 역할이 기대가 되었다.
설명을 듣다 보니, 시간이 훅 지나갔다.
5:00 PM
예이~! 퇴근 시간. 출근 첫날이 그럭저럭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굴러가는 큰 톱니바퀴의 작은 부속 자리를 하나 갖게 된 것일 뿐인데도, 앞으로의 회사생활이 여전히 기대되고 설레는 퇴근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