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것을, 평생을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결혼 전에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내가 아닌, 내 가족이 아닌 타인과 가족을 이루어 살아간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와 고통,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결혼하고 뒤늦게 알았다.
올해로 결혼 20년 차를 맞이했다. 신혼 초기로 돌아갈 거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고민할 것도 없이 "NO!"이다. 지금의 우리 부부의 모습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싸움과 화해가 있었던지, 이 과정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이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처음보다는 잘 안다. 누구보다도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편하다. 집이라는 한 공간에서 함께 또는 각자 할 일을 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남편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마도 시작은 이사이지 않았을까 싶다. 3년 전 이사를 하면서 동네가 바뀌니 마트는 어디에 있고, 버스는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에 괜찮은 식당은 어디 있을까 찾을 겸 퇴근 후 저녁을 마치면 매일 1시간씩 함께 걸었다. 1달 정도 함께 걷다 보니 같이 걷는 게 익숙해지고,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주전부리도 하며 더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그 후로는 낮에도 저녁에도, 평일에도 주말에도 시간이 생기면 함께 걷는 일이 많아졌다. 봄에는 동네에서 꽃구경을, 가을에는 단풍 구경을 하는 것도 최근 2년 사이 우리 부부가 꼭 하는 일이다.
어슬렁어슬렁 동네를 걷다가 커피 마시고 싶을 땐, 가까운 곳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는 재미, 각자 가져온 책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결혼 초에는 각자가 에너지가 너무 많았다. 내 것이 옳다고 박박 우기기도 하고, 온몸을 사용해서 마음에 들지 않음을 어떻거든 표현하려 했는데, 이제는 서로가 힘이 빠졌다. 인상을 쓰기보다 허허 웃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
배우자와 함께 한다는 건,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인 것 같다. 어린 왕자가 장미를 길들였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지며 부부만의 고유문화가 생기는 것. 외롭지 않도록 서로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배우자와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