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런 꼴이나 보이고 참. 근데 어쩌나? 유일한 지인 번호가 형 하나라 종종 추해질 것 같네.
-얼마든지.
이런 응원을 받고 싶었나 보다. 선우는 그래야 소진을 만날 용기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은 치즈가 올려진 퍼석한 감자튀김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리고 흐르지 않은 눈물도 같이 삼켰다.
-너 연애할 때 생각난다.
프러포즈받아 줬다고 얼마나 울먹였냐. 그때 말은 안 했지만 네 표정 보고 한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어.
동생이 감정을 넘기는 동안 형은 추억을 꺼내 올렸다.
-나도 결혼은 이런 감정이 솟는 여자와 해야겠다고 말이야. 근데 막상 그런 사랑이 흔하지 않다. 나는 아직도 못 만났고. 선우 너처럼 기적을 만났다면 놓치지 말아야지. 안 그래?
선우의 전화벨이 울린 건 며칠 만이었다.
-유서방 어딘가?
-잠깐 지인과 나와 있습니다.
-혹시 소진이랑은 만났나?
-아직 못 만났습니다.
미숙의 목소리가 떨렸다.
-소진이가 아침 이후로 연락이 안 되네.
-친구 집에 있는 거 아닌가요?
-여행 간다고 했어. 도착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연락 없어서 전화했더니 안 받아.
-여행이요? 누구랑 어디로요?
-혼자 갔어. 친구한테 부산으로 가겠다고 했다는데...
-혼자 부산을요?
평소 여행에 취미가 있던 소진이 아니기에 믿어지지 않았다.
-연락되면 전화 주게나.
-알겠습니다.
촉촉했던 그의 눈가가 바짝 말라버렸다.
-무슨 전화야? 왜 그래?
선우의 눈이 잠시 초점을 잃었다가 휴대폰 숫자 1을 길게 눌렀다. 어떤 목소리든 들리길 바랐지만 연결음만 반복되었다.
-형.
-응. 제수씨한테 무슨 일 있데?
-소진이가 혼자 여행을 가서 연락이 안 된대. 지금 내 전화도 안 받고.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당장 부산으로 가봐야겠어.
-지금? 부산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아니다. 경찰서에 신고부터 하자. 고속도로 CCTV 그런 거 있지 않나? 신고는 어머님께 부탁하고 나는 우선 출발할까?
-선우야.
-형! 미안해 나 먼저 가볼게.
-선우야, 잠깐만.
-나 소진이 없으면 못 살아 형. 알잖아.
-알아, 우선 침착하고. 너 이대로 운전은 위험해. 택시로 움직이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겠지?
-제수씨 괜찮을 거야. 장거리 운전하며 배터리가 없을 수도 있고. 그리고 부산 말고 다른 데 갔을지도 모르잖아. 놀거나 자느라 안 받는 걸 수도 있고.
-그러면 좋겠는데... 아내 성격에 그럴 일이 없단 말이야.
-경찰서 가서 신용카드 사용처부터 확인해 보자.
-아, 맞다! 나 소진이 카드 써서 PC에 공인인증서 있어.
-그러면 집으로 가보자. 일어나.
택시 안에서 그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소진이가 연락처를 지우라고 했을 때 바로 그러지 못했다.
장모님을 만나고도 아내에게 달려가지 않았다.
매일 그리웠지만 메시지 하나도 망설였다.
1층 | 맞춤 수제화
문이 닫힌 가게 앞에서 유나가 동민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에 검은색 차가 세워졌고 문을 열고 남자가 내렸다.
-타.
-아니야. 남자친구 출발했다고 했어.
-연락해. 거기로 간다고. 아니면 나도 따라가고. 어떻게 할래?
그는 빈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유나는 어쩔 수 없이 메시지를 쓰며 차에 탔다. 전송을 누르려는데 그가 휴대폰을 낚아챘다.
-나랑 먼저 얘기 좀 해.
-무슨 얘기를 해? 휴대폰 이리 줘!
남자는 전원을 끈 휴대폰을 왼쪽 주머니에 넣고 시동을 켜 출발했다. 약속 장소는 근처 삼성역이었지만, 차는 고속도로를 향해 진입하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야?
남자는 입은 꾹 다문 채 정면만 보고 있었다.
-오빠...
그는 계속 직진했다. 유나는 남자가 무섭지 않았지만 불안했다. 1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파도 소리는 들리지만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눈앞이 캄캄해 구분하기 어려웠다.
-오늘 돌아가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 있는 곳에서 지내자. 아무도 방해 못 하게.
유나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봤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쥐고 안 놓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혼하겠다는 말도 믿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남자는 다른 사람처럼 굴었다.
계속-
매주 화, 수요일 밤에 연재됩니다.
*내일은 개인 사정으로 연재를 쉬고 14일 화요일에 뵐게요♡ 가족분들과 따스한 한가위 명절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