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안 됩니다.
-무슨 일 생기면 책임지실 겁니까? 급해서 그럽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몇 번을 말씀드려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본인이 아니면 CCTV는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 본인이 사라졌다잖아요. 저도 몇 번을 말합니까. 그러면 그것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도착하기 전에 가게 사장과 직원이 같이 있었습니까?
-경찰서에 접수부터 하고 오세요.
남자의 번호를 미리 알아뒀어야 했다. 동민은 어제 자신이 찾아가 자극하는 바람에 유나를 곤란에 빠트린 것 같았다.
'자책은 유나부터 찾고 나중에 하자.’
-경찰서에 접수하고 올 테니 삭제되지 않게 보관 부탁드리겠습니다.
피곤 가득한 직원의 얼굴에 화가 났지만 티 내서 좋을 게 없었다. 동민은 소리를 지르는 대신 연신 고개를 숙이고 건물관리실을 나왔다.
“어. 동민아. 오고 있어?”
-형. 나 일이 좀 생겨서. 선우형한테 미안하다고 전해줘.
불안의 그림자가 커질수록 동민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유나의 집 앞으로 갔다. 하지만 힘이 풀린 다리까지는 어쩌지 못해 쭈그려 앉았다. 주변의 모든 움직임을 동민은 두 눈으로 쫓고 있었다.
밤 11시 57분
공기마저 고요해지고 서서히 주변의 소음도 줄어들었다. 집의 벨을 누를까 고민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힘없는 발소리가 다가왔다.
유나다! 동민은 뛰어가 그녀를 살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상한 데는 없는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눈을 크게 떴다. 다행히도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한시름 놓으며 유나의 눈을 보는 순간, 가슴 사이가 따끔거렸다.
-어떻게 된 거야... 휴대폰도 꺼져있고. 집에 말씀드리고 경찰서까지 가보려던 참이었어.
-...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생겼던 거야?
동민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 유나에게 무사하면 됐다고 다독였다. 유나는 간절했던 동민이 바로 앞에 있었지만 눈을 볼 수 없었다. 안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힘겹게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 안 만나는 게 좋겠어.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그녀의 거짓말을 눈치채는 건 동민에게 어렵지 않았다. 유나는 통증을 느꼈지만 동민에겐 건조한 문장이었다.
-동민아, 사실은...
-유나야. 우선 쉬는 게 좋겠어. 얘긴 내일 하자.
-오늘 내가 사라졌던 이유 궁금하지 않아?
-무사하면 됐어. 내일 점심때 집 앞으로 올게.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자. 휴대폰은 켜 두고.
유나의 켜진 휴대폰을 확인하고 동민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오니 긴장이 풀렸는지 31도의 여름밤에도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동민에게서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는 따듯한 물에 몸을 푹 넣었다.
아무 얘기도 하지 못하고 헤어지잔 말만 내뱉었다. 그런 자신에게 동민은 다 안다는 듯 눈으로 토닥여주었다. 그의 듬직한 모습이 한편으론 불편했다. 뭘까. 뭘 아는 걸까?
머리가 마르고도 한참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에 가게를 나가야 하나 싶었지만 무서웠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잠들긴 그른 것 같아 오전에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휴대폰 화면이 밝아지며 진동이 울렸다.
-동민아. 안 잤어?
-응. 더워서 잠이 잘 안 오네. 넌 왜 안 자. 피곤했을 텐데.
-습해서 그런가. 머리가 아직 안 말라서.
-그래? 머리는 잘 말리고 자야지.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음률 없는 대화가 오갔다.
-동민아.
-응.
-네가 물어봤었잖아.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응.
-그 남자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었잖아. 근데 나 거짓말했어. 실은... 결혼한 사람이었어.
동민은 조용히 대답만 할 뿐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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