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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by 신선경



선우는 컴퓨터를 켜고 신용카드 홈페이지에 접속해 소진의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했다. 카드 사용 명세를 보니 30분 전 편의점에서 결제한 게 최근이었다.


-뭐야? 제수씨 아직 서울에 있는 거야?

-아. 이건 가족 카드 장모님이 쓴 거네.

-어! 선우야. 이거 아니야? 카페 같은데.

이번엔 소진의 카드 사용이 맞았다. 1시간 전에 카페와 호텔에서 결제한 내역이었다. 호텔 주소를 확인하고 서둘러 택시를 불렀다.


-형, 고마워! 전화할게!


선우를 태운 택시가 바로 목적지로 출발했다.


-기사님. 얼마나 걸릴까요?

-저녁이라 막히지는 않는데요. 그래도 4시간은 더 걸릴 겁니다.

-최대한 빨리요. 기사님. 죄송합니다. 워낙 급해서 제가... 죄송합니다.


운전석을 향해 여러 번 죄송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아내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고 통화연결음이 반복될수록 입이 말랐다. 휴게소에 잠시 정차했을 때도 선우는 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에게 4시간 40분은 4일 밤을 꼬박 지새운 것보다 더디게 흘렀다.






첫 만남이 인상 깊었다.

강릉이나 속초, 제주와도 달랐다. 하나, 두 개 천 조각만 몸에 걸친 걸음들 사이로 그보다 더 화려한 바다 도시. 8월 끝자락의 부산은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선글라스 위로 바다가 그녀를 반기듯 반짝였다. 눈부신 빌딩은 저절로 눈이 감겼다. 소진은 이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었지만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통유리 너머 푸른 물결은 온몸을 나른하게 했다. 커피는 아는 맛이었지만 충분히 시원하고 상쾌했다.

운전하며 긴장했던 마음이 가라앉자 헤어졌던 친구가 다시 붙었다. 얘는 참 아무 때나 잘도 온다.

‘어떻게 살까.’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수도 없이 고민했었다. 이혼하면 주변에 뭐라고 말하지? 이대로 쭉 혼자 사는 게 좋을까? 아직 젊으니 뭐든 서두를 건 없었다. 다만 아이는 힘들겠지... 소진은 어떤 재미로 즐기며 살아야 하는지 위장이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우선 여행하는 동안 가게를 정리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짤 예정이었다. 엄마는 쉬게 해드리고 혼자 할 수 있는 걸로 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지역도 하나씩 다닐 생각이었다. 내년 봄엔 지연이와 파리 여행이 좋을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에도 가게를 닫고 방에서 밀린 드라마를 실컷 보고 싶었다. 그러자 집에 있는 단단한 매트리스와 푹신한 솜이불이 떠올랐고 자연스레 선우가 나타났다.

'그는 어떻게 살려나.'

공인중개사 개업을 안 하면 굳이 시험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두 달밖에 안 남았는데 아깝지 않나? 따둬서 나쁠 건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의 적성에 딱 맞다고 소진은 호언장담했었다. 근데 한편으론 마음이 물러서 중개 수수료도 툭하면 제대로 못 받을 것 같긴 했다. 그런 것 잘하는 사람이랑 같이 일해야 하는데 동업은 또 위험했다. 어느새 얼음이 힘없이 다 녹아버렸다. 색을 잃은 커피는 맛도 잃었고 허기가 져 일어났다.


지연에게 추천받은 은복국은 성공이었다. 휴게소 소시지 이후로 4시에 먹는 첫 끼여서 더 감동일지도 몰랐다. 돌아갈 때 포장해서 엄마에게 가야겠다며 가게를 나섰다. 목적지 없이 다녔다. 소진 혼자서 이렇게 멀리 온 것은 처음이었지만, 낯선 곳이 주는 편안함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잠깐 걸었는데도 몸이 끈적했다. 객실로 올라가기 전 편의점에 들러 맥주 3캔을 집었다. 술을 썩 즐기진 않았어도 여름날 맥주 한 모금과 바싹하게 튀긴 치킨은 피로를 날려주었다. 임신을 준비하며 술과 기름진 것을 멀리했으나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타월을 두르고 나와 에어컨 아래 앉았다. 바다에 왔으니 돌고래 나오는 이상한 드라마를 정주행하기로 했다. 소진은 오랫동안 운전한 탓에 한 캔을 다 마시지도 못하고 잠이 들었다.






계속-

매주 화, 수요일 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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