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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Sep 12. 2020

토란을 수확했어요.

공감과 선택

내가 사는 마을의 집집이 토란을 키운다. 아내도 몇 년째 백 야드에서 키우는 토란이 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관상용으로 키울 뿐 식용의 목적이 아니다. 키우는 목적이 아내 하고는 다른 것 같다. 아내가 오늘 토란 대하고 잎을 수확해서 말려야 한다고 도와달라기에 선뜻 그러기로 했다. 토란대를 자르는 것은 나름 재미있었다. 한아름 잘라서 테라스에 올려 두며 내 일이 끝난 줄 알았다. 내일쯤은 들깨 듬뿍 들어간 토란대 무침이나 소고기 국을 먹을 거란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이 많은 것을 모두 껍질을 벗기고 말려야 한단다.

"...."

순간 세상에 얻을 수 있는 것에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더불어 지금껏 사람 사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들만 내 머릿속에 잔뜩 싸들고 살아왔다는 것을 느낀다.


저녁 무렵 시작한 토란줄기 껍질 벗기기는 아내와 함께 손가락이 검게 물들도록 한참의 고생을 하며 다음날 오전까지 꼬박 달라붙어 손끝이 얼얼함을 느끼고서야 끝났다. 이제 토란줄기 음식을 보게 되면 맛있겠다는 생각보다 "소중함"이란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토란대 줄기 하나하나의 껍질을 벗기다 보니 내가 예전에 먹었던 줄기 무침이 참 소중한 음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먹게 될 토란 음식은 예전의 맛과는 다른 무언가를 더 느끼지 않을까 한다. 


내가 먹을 토란줄기는 오늘도 햇볕이 뜨거운 곳을 피해 그늘에 잘 누워있다. 

토란은 줄기와 잎, 그리고 뿌리까지 그 맛과 식감, 효능이 다르다고 한다. 우선 토란은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고,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혈관 내 나트륨과 노폐물을 배출하는데 도움이 되며, 토란의 점액에 함유된 뮤신 성분은 위산으로부터 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외에도 비타민 B1, C의 함유량이 풍부하여 피로 해소에 좋고, 염증 완화 및 바이러스로부터 면역력 강화에도 효과적이며, 불면증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토란대는 장내 유익한 균의 증식을 도와 장염을 완화하고 변비 예방에 좋으며, 토란줄기에 함유된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A 등 항산화 성분이 활성산소를 제거한단다. 줄기는 토란에 비해 3.6배 많은 칼슘을 함유해서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또한 토란잎은 불면증 환자에게 특효가 있는 천연 수면제라고 한다. 토란이 건강에 이렇게 좋을 줄이야...


애틀랜타의 뜨거운 여름은 막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선선해진 바람을 느끼며 토란을 손질하면서 과거 이맘때쯤 우리 할머니, 어머님들도 이 일을 하시고 계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옛날 어른들의 그 자리에 아내와 함께 앉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배고팠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쉼 없이 일만 했을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며... 


 사실, 우리나라 추석명절의 대표음식인 토란국이 그리워지는 것은 해외에 있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토란국의 담백한 맛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 내게는 가장 인기 없던 음식이었고, 특히나 먹을 것이 많은 추석기간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나이가 한 살씩 더해갈수록 그런 토란국 한 그릇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그리워진다는 것은 내가 나이가 먹었다는 증거인가 보다. 겉모습이 화려하고 언변 좋은 사람에게 현혹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오랜 세월에 토란국 같은 추억으로 남을 사람 만나기를 고대한다.


가을이 시작되는 초입에 아내의 정성으로 자란 토란대를 손질하던 순간은 최근에 내가 느낀 작은 행복이었다. 토란은 나의 침샘을 자극했고, 지나간 추석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고, 그리운 부모님들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더구나,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라고  스스로를 일깨워준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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