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감상법

의식의 필터를 잠시 끄고 무의식으로 화면이 망막을 통과하도록

by 정오의 햇빛



오늘 나는 서재에 네 시간 앉아 있었다.

열다섯 개쯤 되는 글을 썼고, 집중력은 말 그대로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다.

머리는 더 이상 생각을 만들어낼 여력이 없었고, 그 상태로 영화관에 들어갔다.

영화는 재미없었다.


졸렸고, 화면이 잘 안 들어왔다.

‘내가 오늘 써야 할 집중력을 이미 다 써버렸나?’ 영화가 문제인지, 내가 문제인지 잠깐 헷갈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다는 것도 사실은 굉장한 집중 노동이라는 것.

이해하려 하고, 해석하려 하고, 비판하려 하고, 과거의 비슷한 영화들을 불러와 비교하려 하고,

감독의 의도를 짐작하려는 그 모든 것이 의식의 과잉 작동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포기했다. 정확히 말하면 집중할 힘이 없어서 포기가 아닌 방치되어 있었다.

이해하지 않기로, 집중하지 않기로, 의식을 느슨하게 풀어놓기로 했다. 살짝 졸았다.

정확히 말하면, 의식이 꺼진 상태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석도 없고, 판단도 없고, “이 장면은 왜?” 같은 질문도 없는 상태.


그때 알았다.

인식 작용이 멈추면 사고도 멈춘다. 사고가 멈추면, 영화는 해석되지 않고 침투한다.

무비판적으로, 무사고적으로, 무지성적으로. 그 상태에서 영화는 원형 그대로 내 안으로 들어온다.

의미가 아니라 이미지로, 메시지가 아니라 리듬으로, 이야기가 아니라 감각으로.


내용은 놓친다. 줄거리는 흐릿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장면의 공기, 배우의 숨결, 음악이 들어오던 순간의 감정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영화를 가장 잘 보는 방법은 영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특히 글을 많이 쓴 날, 집중력을 다 써버린 날, 머리가 더 이상 말을 만들지 못하는 날에는

살짝 조는 상태가 가장 완벽한 영화 감상법일 수 있다.


의식을 끄고, 사고를 멈추고, 영화를 ‘보는’ 대신 그저 망막을 통과하게 두는 것.

영화는 그때,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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