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는 팔다리 운동이 아니다.
테니스를 세 시간 동안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팔도 다리도 많이 쓴 것 같은데, 땀은 팔에서 나지 않았다. 등골에서 흘렀다.
공을 치는 동안 팔은 비교적 멀쩡했고, 손아귀만 젖었다.
대신 견갑 안쪽과 척추를 따라 몸의 중심부가 먼저 뜨거워졌다.
왜일까, 하고 생각했다.
테니스는 팔다리 운동처럼 보이는데 왜 몸은 중심에서 반응하는 걸까.
같은 환경에서 같은 시간 운동을 해도 팔에서는 땀이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런데 계단을 오를 때면 나는 여전히 깜짝깜짝 놀라고,
내려올 때는 다리가 부들부들 떤다.
테니스를 그렇게 쳐도 무릎을 깊게 쓰는 일에는 여전히 서툴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테니스를 치고 있었지만, 내 몸 전체를 고르게 쓰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걸.
테니스는 팔의 힘으로 치는 운동이 아니었다.
광배와 능형, 견갑을 붙들고 있는 근육들, 몸통을 세우고 회전시키는 복부,
방향을 바꾸는 엉덩이와 허벅지.
이 운동은 팔다리를 움직이는 운동이 아니라 중심을 유지하며 전체를 조율하는 운동에 가까웠다.
그래서 땀은 등에서 났고, 그래서 팔은 멀쩡했으며, 그래서 계단 앞에서 나는 여전히 낯설었다.
나는 그동안“테니스를 하니까 운동을 많이 하고 있다”는 말로나를 안심시켜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더 묻지 않아도 된다고 믿어버린 것 같다.
이 운동이 내 몸의 어디를 채우고, 어디를 비워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종종 이렇게 살아왔다.
하고 있다는 사실로 나를 통과시켰다.
충분한지는 묻지 않은 채.
운동을 하고 있다,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름 애쓰고 있다.
그 말들은 편리했고, 그 덕분에 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됐다.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이름으로 덮어두었다.
테니스라는 이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나는 여전히 테니스를 친다.
그만둘 생각은 없다.
다만 이제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조금 경계하게 되었다.
그 말이 나를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어쩌면 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이제하고 있다는 말 앞에서 잠깐 멈춘다.
그리고 그 말의 진실을 더듬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