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에 일찍 잤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전을 부치지 않는다.
떡도 썰지 않는다.
운동을 하고 빨래를 하고 넷플릭스를 본다.
신선놀음 같다. 그런데 자꾸 졸린다.
피곤한 걸까.
권태로운 걸까.
명절이라 테니스코트도 닫혔다. 도서관도 쉰다. 갈 곳이 없다.
남들은 연휴라 설렌다는데 나는 왜 연휴가 시작되면 막막해질까.
연휴가 되면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없다.
저녁이 되어서야 생각했다.
이게 졸음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모두 함께인 날.
나는 만날 사람도 찾고 싶은 사람도 없다.
이걸 명절 증후군이라 부를 수 있을까.
쓸쓸하다고 말하기엔
쓸쓸함도 또렷하지 않다.
그냥 자꾸 잠이 온다.
말로 표현되지 않아서 몸이 꺼지는 것일까.
다섯 시쯤 전화가 왔다.
집이 비었으니 와서 떡국을 먹으란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갔다.
떡국을 한 그릇 담아 왔다.
귤 몇 개.
돼지고기 조금.
양파 두어 개.
작은 지퍼백들.
물건은 작다.
그런데 손은 따뜻하다.
나는 물질은 많이 받아보았다.
마음을 받은 기억은 없다.
그녀는 왜 나에게 자신을 덜어주는 걸까.
나는 누구에게 나를 덜어준 적이 있었을까.
나는 주는 법을 몰랐던 건 아닐까.
전부를 주고 돌아오지 않으면 분노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눈빛도 말도 아끼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명절 전날.
쓸쓸하다고 말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선택한 삶이라 누구를 탓할 수 없어서일까.
그녀의 떡국은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늦은 밤 집에서 혼자 먹은 차가운 떡국은 유난히 맛있었다.
일년내내 기억될 떡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