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누가 열 수 있는가.
요즘 뉴스나 정책 이야기를 들으면 ‘고립 청년’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고립된 사람을 발견하고, 국가와 사회가 도와야 한다는 이야기들.
물론 누군가를 방치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문제를 더 키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고립의 핵심은 밖에 있지 않다.
사람 안에 있다.
사람이 자기 감정의 근원을 모른 채 그 감정 속에 파묻히는 것.
왜 우울한지, 왜 분노하는지, 왜 아무것도 하기 싫은지 그 질문을 한 번도 끝까지 밀어붙여 보지 않은 채
그 상태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는 누군가 와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가만히 생각해 보면 꽤 이상한 상태다.
자기 문제를 남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
왜 이런 감정이 생겼는지 스스로 연구하지 않는 것.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지 않는 것.
그런데도 먹고사는 것이 크게 위협받지 않는다면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러 버리기 쉽다.
어쩌면 과도한 보호가 인간을 작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