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안아주세요
곱고 고운 나이.
나비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열네살 정민.
1943년. 평범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받으며 자라는 외동딸 정민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갑니다.
"잘들어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올 수 있다. 이 돈을 가지고 거창 마을로 가주세요 케라. 알겠나!"
몸에 지니고 있으면 나쁜 일은 절대로 안생긴단다.
몸에 잘지니고 있으라.
일본군에게 끌려 이름 모를 부대의 위안소로 끌려가는 차안에서 정민과 영희는 처음 만났습니다. 열네살 정민과 열다섯살 영희는 금방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의지하며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고향에 돌아가야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는 아이들.
수십년이 지나 현재를 살고 있는 성폭행 피해자 은경의 눈으로 과거는 하나 하나 되짚어 집니다. 그리고 은경의 눈으로, 은경의 모습으로 대신 보고 싶어하는 이 할머니의 옛동무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잃었던 것은 무엇이고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의미에 대해 하나씩 되새겨 봅니다.
드디어 은경의 귀향굿을 통해 나비가 되어 한맺힌 영혼들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가슴이 아려서 보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누가 누구를 해치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폭력을 가하는 일은 늘 슬픈일이지만
이 일은 그냥 슬픈일이 아닙니다.
고작 열네살, 열다섯살 밖에 되지 않는 어린 소녀들의 이야기이며
장기간 매일매일 지속됐던 인권유린과 성폭력의 현장이며
20만명이 끌려가 239명만 살아왔고
그 중 44명만 현존하는 살인의 현장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누구도 그들이 어떠한 고충을 겪었다 어떤 시간을 살아 돌아왔다 예측조차 하지 못하는 지옥을 보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발뺌하고, 변명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탓하며
고작 작은 돈을 받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어처구니 없는 용서와 화해로
그들의 남은 권리조차 빼앗고 깊은 상처만 남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억울함을, 그 상처를 누가 감히 안다고 할 수 있나요.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런 지옥을 살았던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대신 가해자를 용서해줄 수 있나요.
귀기울여 주세요.
다 들어 주세요.
그리고 안아 주세요.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며 가족이었지만
사랑하는 부모와 가족들, 조국을 버리고
차가운 땅에서 눈을 감아야했던,
혹은 한맺힌 삶을 살아야 했던 분들의
아름답고 고귀한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살아 있어 주셔서, 다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