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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Jun 27. 2023

초등 엄마 1

소설 속 한 문장이 나를 흔든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더니, 아주 가끔 브런치어플에서 안부를 물어오네요 . 기계적인 알람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낯선 이에게 챙김을 받는 그런 느낌이 들기는 했습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어서 인지, 제게도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작년에 유치원생이었던 아들은, 올해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주거 공간도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죠.


아는 분이 한 분 계신 곳으로 이사를 왔지만, 그분은 개인적 사정으로 이사를 가셨고, 정말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곳으로 아들, 남편, 저 이렇게 둥지를 틀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이동하였기에 제 친구들과 아들 친구들은 꾸준히 만나는 변화는 있지만, 큰 타격을 줄 만큼의 변화를 느끼고 있지는 않네요.


함께 유치원을 나온 친구들이 없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친구 문제가 큰 걱정이었습니다. 입학하고 몇 달은 매일 같이 등하교를 함께 했습니다. 등하교를 하면서 같은 유치원을 나온 친구들이 서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왜 이사를 왔을까라는 후회도 조금 들더군요. 다행히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나는 친구가 있고, 이사 온 아파트가 마음에 들어서 인지 아들은 불안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참 다행이지요. 저는 그런 엄마 같아요.  아이가 부딪혀서 겪어야 하는 일들과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미리 불안을 느끼며, 생각하는 그런 엄마요.


주변 환경이 새로웠기에 최대한 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몇 달은 아이와 부딪히면서 화나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화는 꾹꾹 눌러, 체에 걸러진 고운 말들만 뱉어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아이의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은 만큼, 제 스트레스는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아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뭉그적 거리거나, 가만히 있으면 견디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고운 말들만 해주고 싶었는데...... 바람은 왜 이리도 현실로 이행되지 않는 걸까요. 이래서 늘 실천이 어렵다고 하나 보니다.


제 감정은 스프와 라면사리를 넣기 전에 끓어 오르는 물상태였습니다. 별것도 아닌 일들(양치하기, 가방 챙기기, 준비물 챙기기, 정리하기)이 저를 끓게 만들더군요. 육아를 하면서, 결혼 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면서 늘 사소한 것들이 마음을 다치게 하고, 분노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행동해야 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지요. 이 부분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최근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이라는 소설입니다. '구'와'담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결핍과 불행이 가득한 삶이었지만 주인공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지만 결국은 다시 만납니다. 부모님이 떠넘긴 자신이 쓰지도 않은 빚을 안게 된 '구'는 자신과 함께 있으면 더 나아질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할 '담이'를 밀어냅니다. 자석처럼 '담이'는 '구'옆에 있습니다. 그토록 사랑한 '구'는 죽게 되고, '담이'는 '구'를 화장하거나, 땅에 묻는 것 대신 '구'의 시체를 먹습니다. 짧은 줄거리만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읽어보시면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구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흉악번인가. 나는 사이코인가. 나는 변태성욕자 인가. 마귀인가. 야만인 인가. 식인종인가. 그 어떤 범주에도 나를 완전히 집어넣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인가.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우리는 이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다. 사람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 사람은 뭐든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사람은 거짓말하고 사기를 친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작살낼 수 있다. 그리고 구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을 이용한다."(p.163)


소설의 한 대목입니다. 그중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라는 문장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제 머릿속에 들어옴과 동시에 아들을 함부로 대한 제 행동들이 생각나더군요. 레고 피겨로 사람놀이를 좋아하는 아들. 동물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 생명이 없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이야기를 만드는 아이한테 제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기만 하고, 적절하게 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서 아이는 우산으로 막을 수 없는 돌풍이 부는 소나기를 맞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설 속 문장을 보고, 눈에 보이는 곳에 적어 두었습니다. 문장을 처음 보고 느꼈던 제 감정이 유지되기를 바라면서요.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가끔 저를 쩍 하고 갈라놓는 느낌이 드는 문구를 만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순간들 때문에 책을 놓지 못하나 봅니다. 저를 올바른 방향으로 흔드는 문장이 제 눈앞에 계속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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