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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Jun 28. 2023

예쁜 말

실수를 대하는 자세

아이가 학교를 끝마치면 집에 바로 옵니다. 학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서 집에 오면 엄마표를 앞세워 함께 이것저것 공부를 하기 위해서지요. 남편이 공부라는 단어를 들으면 하기 싫은 느낌이 든다고 하여, 저희 집에서 뭔가를 새롭게 배우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나은 지는 모르겠네요. 아이에게는 매일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어휘만 바뀌었을 뿐 똑같기 때문이지요. 


책상에서 오랫동안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오후에는 지역 청소년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수업을 들으러 갑니다. 사교육은 안 하지만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참여하는 편입니다. 아이가 교실에 들어가면, 전 근처 도서관이나 로비에서 대기를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간은 제게 꿀맛 나는 시간입니다. 아이가 뭔가를 배우고 있는 동안에 저는 읽고 있던 책을 마저 읽거나, 새로운 책을 구경하거나, 마음 맞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날씨만 괜찮으면 근처 공원을 몇 바퀴 돌면서, 하루 목표로 세운 걸음수를 채우기도 하지요. 


평소와 다르게 청소년문화센터는 과학 관련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널찍한 로비는 과학적 원리를 활용하는 도구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일정기간 동안 전시를 하더니 때마침 아이 수업이 있는 날이 전시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손이 오고 갔던 전시 물품은 네모난 금속 상자에 담겨 있었습니다. 전시를 돕던 분들은 막바지 짐정리로 바빠 보였습니다.  


누군가는 바쁘지만 저는 아이 친구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며칠간 보지 못해서 밀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형 수업에 따라온 둘째는 돌아다니기를 포기하고 저희들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계속 끊기는 상황이 되자, 그림도구를 아이게게 쥐어주었습니다. 전시 중이라서 마땅한 책상이 없어서, 의자 앞에 의자를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아이가 서있던 근처에도 의자가 있었지만, 저는 제 옆에 있던 의자를 들고 아이 앞에 두었습니다. 


"어, 잠시만요. 저희가 짐을 나르기 위해서, 문에 받쳐 놓은 의자예요."


뒤를 돌아보니 중년의 남성분이 기분 좋게 웃으시며 제가 한 행위를 알려주셨습니다. 문에 고정핀이 없어서 기대놓은 의자를 제가 쏙 빼서 간 것이지요. 


"죄송해요, 제가 이러네요. 그만 의자를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에 꽂혀서 아무 생각 없이 가져가 버렸어요. 다시 갖다 놓겠습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집중력이 좋으셔서 그런 거예요. 집중력이 좋은 사람은 집중한 것에 신경쓰느라 주변을 못 본다고 하더라고요. 머리가 참 좋으신가 봐요"


어리석은 나의 실수를 재능 있는 실수로 둔갑을 시켜주신 순간, 나도 웃고, 중년의 남성분도 웃고, 친구 엄마도 웃었습니다. 저로 인해서 짜증 나는 순간이셨을 텐데, 여유 있게 실수를 포장해 주시는 순간 마음이 간질거렸습니다. 중년의 남성분은 저 이외에 누군가 실수를 하면, 실수 한 사람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예쁘게 포장해 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실수를 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실수를 했다고 해서, 비난보다는 실수한 사람이 무안하지 않기 위해서 따뜻한 말을 해주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낯선 분에게 받은 실수에 대한 상콤한 치료 덕분이었을까요. 이날만큼은 아이의 실수를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 곱게 포장해 주었네요. 머리가 좋지는 않지만 실수할 때마다 중년 남성분이 해주신 말을 기억하면, 머리가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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