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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Jun 30. 2023

일상 북톡

장 자끄 쌍뻬 <얼굴 빨개지는 아이>

며칠 전 장 자끄 쌍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읽었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주인공 마르슬랭 까이유와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하는 그의 친구 르네에 대한 이야기다. 남들과 다른 점이 있는 둘은 친구가 되었고, 마르슬랭이 할아버지 집에 일주일간 다녀온 사이 르네는 이사를 갔다. 이사 가는 집 주소가 적혀있는 편지를 남겼지만 마르슬랭은 받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 둘은 우연히 만났고, 그이후로 만남을 이어나간다는 따뜻한 이야기다.


좋은 친구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그들은 짓궂은 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또 전혀 놀지도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 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p.58-59)라고 적힌 문구에 공감이 갔다.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서 애써 해야 할 말을 찾지 않아도 되는 사이. 아무 말하지 않고 각자의 손에 책이 들려있으면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이. 나 역시 여백의 미(?)를 즐길 줄 아는 사이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다른 경험을 하면서 좋은 친구에 대한 정의가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나의 기준이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 속 그림이 나의 시선을 더 끌었다. 딱 내가 좋아하는 방식의 그림이다. 어쩌다가 화려하게 색이 칠해져 있는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간단한 선과 제한된 색채를 가지고 그린 그림을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그림이 마음에 든 나머지, 도서관 어플에 들어가서 '장 자끄 쌍뻬'의 책들을 모두 빌렸다. 오래전에 출판되고, 아무도 찾지 않아서 인지 대부분의 책들은 도서관 보존서고에 있었다. 며칠을 기다려서 받아본 책들은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나 역시 홀로 있으면 세월을 거스를 수 있을까라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구겨진 적도 없고, 누군가의 손이 타지 않은 책장을 넘기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번에 내가 이 책들을 빌리면 또다시 보존서고에 들어갈 텐데 다 읽지도 않았는데 책이 가엽다는 생각이 들기는 처음이다. '장 자끄 쌍뻬'의 책들이 세상으로 나들이 나올 수 있게, 그림이 그리워지면 다시 빌려 봐야겠다는 낭만적인 다짐도 해본다.


'쌍뻬'는 프랑스 인으로 미국 <뉴요커>지의 표지 화가이자 가장 중요한 기고 작가로도 활동했다. <뉴요커>의 표지화를 그린다는 것은 모든 그림 작가의 꿈이었고, 그것은 쌍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의 상뻬>라는 책에는 작가와의 인터뷰와 멋진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인터뷰어가 '아주 미세한 것과 아주 거대한 것을 동시에 볼 줄 안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어본 질문에 쌍뻬는 '네, 사정이 허락된다면 그런 주제를 계속 다루고 싶습니다. 나는 항상 끊임없이 놀라고 또 놀랍니다. 조금 아까 창으로 비행기 한 대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에 수많은 사람들이 떠 있는 것이지요.(생략)"라고 답을 한다.  


저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난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그들이 가지고 있을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는 것이 전부이고 그 이면을 상상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작가의 표현이 내가 빌려 쓸 만큼 썩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인터뷰를 한 줄 한 줄 읽고 난 후, 책에 담긴 그의 그림들을 보니 더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같은 그림이라도 작가를 알게되면 그림에 더 애정이 생기는 거는 불가피하다.


아직도 빌려서 다 읽지 못한 책이 쌓여 있지만 읽지도, 보지도 않은 작가의 다른 책들도 역시나 마음에 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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