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아침 Aug 24. 2023

초등 엄마 4

우리 아이는 하루 종일 뭐 하고 놀까요?

 이번 여름이 유독 덥다고 느껴진다. 작년만 해도 입추가 지나면 밤에 느껴지는 더위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처서가 지나도 꿉꿉한 공기 때문에 에어컨을 틀어야 잠을 푹 잘 수 있을 정도이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거의 하루종일 에어컨을 틀고 있다. 더위가 언제 끝날 지 모르니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날씨는 덥고, 에어컨을 틀고, 에어컨 열기로 지구는 더워지고, 더워진 지구가 이상한 날씨를 만들어내고, 에어컨을 틀고............ 뫼비우스 띠 위를 거닐고 있는 것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순환을 겪고 있는 기분이다.


지구야, 미안하다.


아들은 너무 더운 날씨에는 나가기를 거부한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 역시 집콕을 선택한다. 이럴 때는 우리 둘이 쿵작이 잘 맞는 편이다.  그럼 지인들이 묻는다.


"집에서 뭐 하고 놀아요?"


아이가 심심하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해도 나에게는 아들이 질리도록 해도 좋아하는 비밀 무기가 있다. 바로 레고이다. 초특급 비밀을 생각하고 기대한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레고는 아들의 최애 장난감이다. 3살부터 질리지 않아서 단 하나도 누굴 주거나 버리지 않은 장난감이 바로 레고다. 여름방학 전에 당근마켓에서 정품이 아닌 레고가 섞여있는 레고 20킬로를 4만 7천 원에 팔아서 얼른 사 왔다.

모아 놓은 레고

집에서 세척을 하기 위해서 쏟아보니 레고 이외의 다양한 장난감이 들어 있었다. 20킬로가 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양이 워낙 많아서 다시 담아 무게를 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나하나 소독약을 묻혀서 닦다가 3시간 만에 포기했다. 땅에 떨어진 음식도 아까워서 흙만 탈탈 털어서 먹은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인데, 레고를 하나하나 닦고 있는 것은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고추 농사를 지으시는 친정엄마가 깨끗한 수건으로 빠르게 마른 고추를 닦아내시는 모습이 떠올라 레고 전체에 스프레이형 소독약을 듬뿍 뿌리고 깨끗한 수건으로 뒤적거리며 닦아냈다. 뭐 안 한 것보다는 나을 테니 괜찮을 거다.


많아진 레고를 아이방에 쏟아 놓았다. 방에 가서 즐겁게 레고를 할 거라고 기대했지만, 아이가 방에 들어가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아들은 방을 만들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꼭 거실에서 놀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거실에 모든 레고를 쏟아주었다. 그 이후로 아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거실에서 레고를 하고 있다.

아들의 최근 최애 작품-낚시대

거실에 레고가 있으면, 집안이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을 단 1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커튼을 친 밤에 거실을 지나다니면 작은 레고 부품들이 발바닥에 밟히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은근히 작은 것은들이 발에 깔리면 생각보다 짜릿한 통증이 전해진다. 거의 한 달째 거실에 레고가 있다. 아이의 즐거움을 위해서 레고가 우리 집의 가장 넓은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레고님, 언제 자리를 내어 주실 건가요?............


도저히 레고에 희생된 발들이 불쌍해서 아들과 타협을 했다. 잠자기 전 모래성을 쌓듯 모든 레고를 한 곳으로 모아둘 것. 낮에는 인간(?)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을 것. 이 두 가지를 지키지 않을 시, 레고가 아들방으로 쫓겨날 거라고 전했다. 어제 만든 규칙이기에 아들이 지킬지 확신이 잘 서지는 않지만, 당분간은 지켜볼 예정이다.


그래도 오늘은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갈거다. 레고, 에어컨 BYE BYE. 지구야, 나의 발아! 오늘은 내가 만들어준, 내가 피할 수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렴!


작가의 이전글 초등 엄마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