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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Dec 05. 2023

겨울이 덜 춥다.

 언니와 비빔밥

이사 온 지 일 년이 지났다. 같은 지역에서 이동를 했기에 엄청난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오랫동안 걸어서 서로의 집을 오가던 친한 언니, 동생과 거리가 생겼다는 점이다. 우리들은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고 30분 정도 폭풍이 몰아치듯 수다를 떨고 헤어졌었다.


유치원에 가기까지 아이와의 실랑이로 인한 피곤함은 함께 마시는 커피로 휘리릭 치유가 되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입은 씁쓸하지만, 달콤한 시간은 이사와 동시에 증발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친구를 사귀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내가 가는 동선이라고는 도서관이기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접점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아이친구 엄마를 만나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아들이 학원에 다니지 않고, 스스로 학교를 오고 가니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억지로 인연을 만들 수도 있지만, 지나가는 시간 앞에 내가 변했나 보다. 오는 인연이면 오고, 가는 인연이면 가나보다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혼자 있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좋아한다.


걸어서 만나던 언니와 동생은 운전을 해서 열심히 만나고 있다. 우중충한 오늘. 텁텁하고 까끌한 입 때문인지 나물이 가득한 비빔밥이 당겼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친정엄마가 만들어주신 시래기 무침, 어제 끓여놓은 콩나물 가득 들어간 된장국, 주말에 만들어놓은 돼지고기 장조림이 보였다.


시간을 보니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쯤이면 수영에 갔을 언니에게 문자를 했다.


"언니, 수영 가셨나요?"


수영을 하고 샤워를 할 시간을 넘기니 바로 전화가 왔다. 수영을 해서 한껏 들뜬 언니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언니, 배고프면 우리 집에서 언니 좋아하는 비빔밥 먹을래요?"

"좋아, 지금 당장 갈게."


 수영장에서 우리 집까지 차로 15분이 넘는 거리였지만, 언니는 바로 온다고 답해주었다. 참 고맙다. 요리를 하고 대접을 해야 하는 것은 나지만, 나의 제안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오케이'를 외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나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준다.


언니의 출발을 알리는 문자를 받은 동시에 비빔밥 준비에 들어갔다. 원형 4구 프라이팬을 가스불에 올리고, 기름을 넣어 달군 후 반숙으로 계란프라이를 한다. 미리 해놓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먹기 좋게 시래기나물, 된장국에 빠져있는 콩나물, 장조림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그릇에 담아낸다. 그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내 밥에는 들기름 한 숟갈, 언니 밥에는 두 숟갈을 붓는다.


들기름을 몇 숟갈을 먹는 취향을 알 정도로 우리는 소소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서로를 안다는 것 어찌 보면 밥 먹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까 싶다. 비빔밥 그릇 옆에 된장국이 들어있는 그릇을 놓으니 초인종소리가 들린다. 현관문을 열자, 솔솔 풍기는 들기름에 언니가 소리를 지른다.


"우와, 맛있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빔밥이네."


 고추장 반숟가락 넣고 쓰윽쓰윽 비빈다. 서로 자주 보지만 밥을 비비는 시간이 아까워서, 입이 쉬지를 못한다. 입안에 밥 한 숟가락 넣고 오물거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 시간 동안 폭풍이 몰아치듯 이야기를 나눋나다. 자주 보는 사이지만 우리는 만나는 시간을 질질 끌지 않는다. 서로에게 남은 하루가 알차길 바라는 마음에 휘리릭 만나고, 휘리릭 헤어진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 짧지 않은 삶이지만 나의 이런 삶을, 언니의 저런 삶을 서로가 이해해 주니 우린 우리만의 또 이런저런 삶을 살고 있다.

아이와 처음 만들어 본 깍두기

비빔밥으로 빵빵한 배에 찐한 커피로 빈공간을 메꾸고 우리는 헤어졌다. 집에 가는 언니 손에 엊그제 만든 깍두기, 쌈무를 들려주었다. 언니는 어제 내게 직접 만든 귤잼을 안겨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나눠주지만 마음의 짐이 되지 않는 관계. 이런 관계를 남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깍두기가 맛이 있어야 할텐데. 갑자기 걱정이 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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