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야기
매주 화요일마다 아들은 4시부터 6시까지 한자 수업에 간다. 배워야 하는 한자가 늘수록 말로 불평은 하지 않지만, 수업에 가기 한 시간 전부터 이 핑계, 저 핑계를 들면서 미적거린다. 다행스럽게도 안 간다는 말을 하지 않기에 아들의 비위를 살살 맞추며, 차에 실어서 한자교실에 데려다준다.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세차게 몰아칠수록 반발심만 커진다는 것이다. 위험하고,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살살 구슬리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될 때가 많다. 남편과 연애를 할 때도 밀땅을 하지 않은 나였는데, 아들과는 매일같이 밀땅을 하고 있다. 다시 연애를 한다면 밀땅의 고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6시만 되어도 어둑어둑하기에 딴짓(?)을 하려는 아들을 꼬셔서 다시 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한자가 끝나면 2시간 정도 의자에 앉아 있어서 인지 아들은 한자의 기운에 억눌려 다소 차분해지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껏 들떠 있었다.
"엄마, 한자 선생님이 내가 2학년인 줄 아셨대?"
"2학년? 선생님이 왜 그렇게 생각하셨대?"
"이유는 말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선생님이 착각한 이유 3가지를 생각했어?"
"뭔데?"
"첫 번째, 내가 키가 커서 2학년인 줄 아셨던 게 아닐까?"
아들 앞에서 웃지는 않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유에 속웃음이 터졌다. 아들은 또래에 비해 키가 작다. 그와 더불어 어렸을 적에 우유를 매일같이 2리터를 마시고, 잠자는 숲 속의 미녀만큼 잤어도 성인남성 평균키에 미치지 못하는 아빠와 평균에 살짝 못 미치는 엄마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 아들아, 미안하다.
"두 번째 이유는 뭐야?"
"내가 똑똑해서?"
"어, 그래......."
"마지막 이유는?"
"내가 꽃미남이라서?"
"어, 그래......"
아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어디에서 솟아났는지는 모르겠다. 1학년인데도 불구하고 2학년이라고 선생님이 착각한 사실이 아들의 기분을 이 정도로 좋게 만들다니. 예전에 학교 사서도우미를 할 때 키가 작아 보여도 무조건 6학년이니라고 물으면 행복해하던 아이들의 순수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을 아들에게서 보다니.....
선생님의 착각 덕분인지 한자수업에 돌아와서 아들이 바로 한자숙제를 했다. 선생님의 의도적인 착각이 아니었나 싶다. 아들은 기분 좋고, 선생님은 숙제를 해오는 학생이 있고, 나는 밀땅을 덜 해도 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좋은 착각은 자주 하는 게 삶을 좀 더 행복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다우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