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구분은 삶과 깊이 맞닿아 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다 보니, 계절은 해야 할 농사일로 나뉜다. 이맘때쯤엔 씨를 뿌리고, 그다음엔 모내기를 하고, 또 고구마를 심고. 그렇게 한 해가 끝날 때까지 풍경도 바뀌고, 해야 할 일도 달라진다.
하필 일이 겹쳐서 금요일에는 모내기를 하고, 토요일에는 고구마를 심어야 했다. 금요일엔 남동생이 휴가를 내어 모내기를 돕기로 했고, 토요일엔 딸들이 고구마 심기를 맡기로 계획했다. 날씨는 들쭉날쭉했고, 비로 인해 밭엔 물이 고여 마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르지 않는 밭을 여러 번 갈며 애를 쓰셨다. 토요일이 되기 전까지 창밖 하늘을 바라보다가, 수시로 날씨 앱을 들여다보았다.
“비야, 오지 마라. 비야, 오지 마라.”
하지만 바람을 거스르기라도 하듯, 비는 결국 땅을 적실 만큼 내려버렸다.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내려주면 좋으련만.
토요일, 나 혼자 일이 있어 점심 무렵에야 도착했고, 다른 딸들은 일찍 도착해 고구마를 심고 있었다. 촉촉한 흙을 헤치면 뿌리가 살짝 나온 고구마 순을 땅에 꽂는다. 줄기가 다 떨어질 때까지 한 줄 한 줄 꽂고, 뒤따라 오는 사람이 물을 준다. 심고, 뿌리고, 또 심고, 또 뿌리고. 얼마나 빨리 하느냐보다 반복되는 이 동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야 일이 마무리된다.
날씨 때문에 일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정작 고구마 순이 넉넉하지 않아 휑한 밭을 남겨둔 채 일을 접어야 했다. 부모님 일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 했지만, 크게 도움은 되지 못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아버지, 곧 일흔을 맞이하실 어머니.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부모님 농사 이야기를 들으면 “이제 그만두셔야 하지 않냐”고 묻는다. 부모님은 조금씩 일을 줄이고 계시지만, 여전히 농촌에선 ‘젊은 나이’로 통하신다.
쇠약해지는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답답하실 부모님. 평생 땅을 만지며 살아오신 분들이라 아무리 힘들어도 흙을 만질 때 가장 기뻐하신다. 오죽하면, 세차게 비바람이 불어 집 안에만 있어야 할 때는 오히려 몸이 더 아프다며 투정도 하신다.
몇 해 전 허리를 다치셔서 더 굽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려온다. 자식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와 일을 돕는 것뿐이다. 금요일에 모내기를 하시고는 허리가 아프셨는지, 아버지는 허리를 손으로 짚고 조심스레 걸으셨다.
“아버지,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몸 생각하셔야죠. 오래 사셔야죠.”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이 줄어드는 게 느껴질수록, 내 마음은 늘 같은 말로 향한다. 아버지는 웃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얼굴로 조용히 말씀하셨다.
“오래 살면 좋간.”
얼마 전 형을 떠나보낸 뒤, 마음이 휑해지신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아버지의 계절은 여전히 온도가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