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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Dec 03. 2021

버섯이 다시 자랐어요.

몇 주 전 도서관에서 청구번호 400번대 책을 대출하면 아이들에게 버섯 키트를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가 있었다. 쫑이 버섯을 키우고 싶어해서 도서관이 열자마자 버섯 키트를 받고 유치원에 가는 유난을 떨었다.   

 

쫑은 그날 유치원에서 오자마자 가방을 집어던지고 버섯 키트 상자를 열었다. 숟가락으로 배지를 파내고, 물을 흠뻑 주고, 30분 후에 물을 덜어내는 간단한 일련의 작업을 함께 했다.     

 

관상용이 아닌 먹을 수 있는 버섯을 키워서 인지 쫑은 버섯이 자라나기도 전에 버섯으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쫑알거렸다.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듯 쫑은 말하기만 하면 엄마가 뚝딱뚝딱 요리해 줄거라고 생각한다. 버섯이 올라오기도 전 쫑은 버섯잡채로 메뉴를 정해버렸다. 쫑의 기다림에 응원을 받아서 인지 버섯은 쑥쑥 자랐다. 가위로 다 자란 버섯을 똑똑 자르니 양손으로 쥘 만큼의 버섯을 얻을 수 있었다. 물에 대치니 양이 많지 않아서 양파와 당근을 가득 넣어 잡채를 만들었다. 쫑의 선택과 나의 수고로 만든 잡채로 멋진 한끼를 먹었다. 


함께 버섯을 받은 지인이 다시 배지를 파내고 물을 주면 자란다고 해서 다시 처음과 같은 엄숙한 작업을 시작했다.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도 버섯은 배지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버섯을 얻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버리려고 쓰레기통 위에 올려두었다.     


배지와 배지 통을 분리해서 버려야 했기에 일반쓰레기봉투가 채워지기 전까지 배지통은 일주일간 방치된 채 놓여있었다.  

   

배지통이 쓰레기로 분류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어어어, 자기야. 이리 와 봐. 버섯 자랐어.”     


출근을 하던 남편이 배지통 안에서 자라고 있는 버섯을 내게 보여주었다. 관심을 매일같이 주던 때는 자랄 생각을 하지 않더니 무관심 속에서 생명을 다시 틔운 것이다. 버섯을 보니 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당연히 아이에게 애정을 쏟는 것이 맞겠지만 아이가 클수록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엄마가, 아빠가 물러서는 공간 안에서 아이는 그만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키울지도 모른다. 버섯처럼 말이다.

    

처음처럼 잘 자란 버섯을 잘 데쳐서 이번에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버섯을 얻기 위해서 세 번째로 배지를 파냈다. 파낸 지 5일째가 되도록 버섯이 나오지 않은 걸 보고 쫑이 한 마디 거든다.   

   

“엄마, 지난번에 쓰레기통 위에 올려 두었을 때 저절로 자랐잖아. 이번에도 그렇게 해봐. 그러면 버섯이 자랄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지통을 쓰레기통위에 올려두었다. 관심과 무관심 사이를 적절하게 오고 갈 수 만 있다면 아이는 버섯처럼 훌쩍 성장해 있는 것은 아닐까? 세 번째 버섯을 볼 수 있을지 은근 기대가 된다. 아니면 이번에는 욕심을 부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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