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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Mar 13. 2022

비 세차

 4시에 울리는 손목시계 진동이 웅웅 거리며 나를 깨운다. 소리를 맞이할 준비를 먼저 한 건지 소리가 울리자마자 눈이 떠진다. 엎드려하던 스트레칭도 건너뛴 채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부엌 전등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 내가 밤새 찾던 소리를 찾는다. ‘똑똑똑’ 집 밖으로 나와있는 보일러 배기통 위에 빗물이 떨어져야 하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분명 어제 일기예보를 확인했을 때는 밤새 비가 내린다고 했다. 내가 이토록 비를 기다리는 이유는 메마른 땅을 적시기 위함은 아니다. 평소에는 미세먼지를 피해서 지하 1층에 주차를 하는데 어제는 비 소식에 지상에 차를 주차했다. 비 세차를 하기 위해서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거실 전등을 켜고 거실 창을 열었다. 밖이 어두컴컴해서 6층에서 바닥이 젖은 지 보이지 않는다. 방충망까지 열어젖히고 손을 공중에서 저어댔다.  물기가 내 손에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을 한 껏 기대에 부풀게 한 맞지 않은 일기예보가 야속하다.  

   

운전한지는 7년이 되어가지만 7년 동안 세차장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처음 차를 구매하고 물을 담은 작은 통에 수건을 적셔가며 세차를 했는데 그 습관이 아직 남아있다. 경차이다 보니 몇 번 걸레질을 하면 쉽게 세차가 끝나는 것도 나의 습관에 한 몫했다. 스스로 세차를 한 경력은 꽤 되지만 세차를 잘하지 못해서 세차를 하고 나면 물 얼룩이 곳곳에 남아있다. 어떤 화학제품을 쓰지 않고 물로만 세차를 하기에 유리창은 물걸레로 닦고 마른걸레로 닦아주지 않으면 얼룩덜룩한 물때 때문에 운전하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나는 당연스레 앞유리 닦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늘 뒷좌석에 타는 아들은 앞유리와 자신의 좌석 유리의 투명도를 비교하며 불평을 한다. ‘네가 닦을래?’라는 말로 아들의 입을 늘 봉한다. 손세차를 시작하고 비가 내린다고 하면 차를 지상에 주차한다. 내가 물 짠 걸레로 닦는 것보다 비를 맞은 상태에서 걸레로 한 번 쓰윽쓰윽 닦아주는 것이 훨씬 더 깨끗하다. 간혹 찔끔찔끔 내리는 비로 인해 차가 더 더러워지기도 하지만 세찬 비 한번 내리면 차에 묻어 있던 묵은 때가 시원하게 벗겨진다.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일요일에 내리는 비만 기다리고 있었으니  보일러 배기통에서 들리지 않는 소리가 서운할 수 밖에없다. 내리지 않는 비를 원망하며 책을 읽고 있는데 ‘똑똑똑’ 소리가 들린다. 비가 온다. 시골에 살 때는 비 오는 소리가 잘 들렸는데, 아파트에 산 이후로는  보일러 배기통이 아니면 비가 오는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시골에서 듣던 빗소리가 그리워질 때마다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밀려든다. 비는 내리기와 멈추기를 반복하니 시골을 향한 나의 마음도 오르락 내리락 한다.   


글을 쓰고 있으니 6시가 다 되어간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서 인지 밖은 여전히 어둡다. 나의 온 신경이 비에 쏠려있고, 막상 비가 내리니 문득 어제 운전하는 내내 더워서 열어둔 창문을 닫았는지가 기억에 없다. 연 기억은 정확한데 닫은 기억이 아무리 떠올려도 생각나지 않는다. 닫았겠지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모든 신경은 이제는 비가 아니라 혹시나 열린 창문으로 젖을 차에 가 있다. 닫혀 있을 거야.... 글 쓰고 나가봐야겠다. 내 기억을 내가 못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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