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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Mar 14. 2022

불청객

일어나자마자 마신 커피로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마치고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루를 시작한 지 1시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눈 아래가 거뭇거뭇하다. 이런 나의 모습이 하루 이틀인가라고 생각하면서 평소보다 오랫동안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머리숱이 많은 자매들과 달리 머리숱이 적고, 머리카락이 가느다랗다. 둘째 언니는 머리 크기에 비해 머리숱이 많아서 어깨를 넘어 머리카락이 자라면 목이 아프다고 할 정도다. 미용사가 한 손에 가까스로 잡히는 언니의 머리카락을 쥐어보고 놀라는 일은 언니가 미용실에 갈때 마다 벌어진다. 신은 언니에게 풍성한 머리숱을 주신 대신 스무 살이 넘으면서부터 새치를 주셨다. 언니는 처음에 새치가 한두 개가 나면 뽑곤했는데, 이제는 족족 다 뽑다가는 민둥산이 될 수 있기에 주기적으로 염색을 한다.      


여동생의 사정도 둘째 언니와 비슷하다. 더 안타까운 점은 여동생은 다소 예민한 성격 탓인지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쪽머리가 새하야진다. 그래도 이상하게 바깥쪽은 까매서 흰머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마흔 살이 되려면 4년이 남은 동생은 이뻐질 요량으로 갈색, 밝은 갈색, 빨간색으로 머리색을 자주 바꾼다. 동생이 알면 서운하겠지만 바뀐 머리색이 동생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끌어오리는 지는 모르겠다. 첫째 언니는 여동생과 사정이 비슷하다.   

  

나는 30대 중반이 되어서 새치가 일 년에 한 가닥씩 나기 시작했다. 미용실에 가면 머리숱은 적은데 흰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네요를 매번 듣고 있다. 오늘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다가 한가닥 새치를 찾으며 바깥쪽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이런 예상치 못한 손님이 안쪽에 들어앉아 있었다. 하나, 둘, 셋. 흰머리 세 가닥이 늘어져있었다. 뽑으면 더 날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보이는 대로 힘껏 뽑았다. 이제는 오른쪽 차례다. 하나, 둘, 셋. 왼쪽과 오른쪽이 개수를 맞추자고 합의를 본 것은 아닐 텐데 똑같은 수로 자라고 있었다.

     

언니와 동생이 새하얀 새치를 키울 때, 없는 입장에서는 흰머리가 나면 하나도 뽑지 않고 멋지게 길러서 백발로 살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없음에서 있음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한 번에 새하얗게 머리가 변하면 모를까. 윤기도 떨어지는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합을 이루지 못하는 흰머리카락의 존재는 부담스러움을 넘어서 껄끄럽다.    

 

새벽에 보는 이도 없는데 누가 볼세라 입으로 숫자까지 세어가면 내 머리의 불청객을 쫓아냈다. 뽑은 것들을 흰색 휴지에 올려놓으니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6개의 흰머리카락이 흰 바탕에 있었으면 쫒겨나지 않았을거다. 지금이야 6개지만 앞으로 하루아침에 백발로 변하지 않으면 흰색과 검은색의 얼룩덜룩을 참을 건지, 염색으로 흰 녀석을 검은색으로 환골탈태시킬 건지 고민할 듯 싶다.

    

하루 세끼 무엇을 먹을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나의 머리카락에도 적용되다니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머릿속으로 나이 듦을 아는 것과 실제로 나의 눈으로 보는 것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삶 속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어느 책에서 말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 들기에 버거운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오락가락하는 기분과 오락가락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불청객이 별생각을 다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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