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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Apr 09. 2022

롤빗이 머리에 엉켰다....

한 남자가 롤빗으로 멋있게 드라이하는 영상을 봤다. 짧은 머리였고, 손쉽게 하는 모습에서 나 역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요리 동영상을 보고 곧잘 따라 하는 나이기에 영상 속의 남자처럼 나 역시 멋진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따라 해야지 '하면서 하루를 넘기고, 그다음 날 오후. 밖에서 운동을 하고 돌아온 터라 씻으려고 화장대 앞에서 질끈 묶은 머리를 풀었다. 사 놓을지는 7년이 되었지만 거의 써본 적 없는 롤빗이 눈에 들어오는 동시에 어제 보았던 롤빗 영상이 떠올랐다.  

    

나의 머리는 어깨에 닿을락 말랑한 길이다. 영상 속 남자는 짧은 머리였다. 길고 짧은 차이에 대해서 생각을 1도 하지 않고, 늘 롤빗을 사용했을 것 같은 손놀림으로 나의 앞머리이자 옆머리를 끝부터 맛난 김밥을 말 듯 롤빗으로 돌돌 말아 올라갔다.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장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정수리 끝까지 롤빗을 말아 올렸다. 정수리 끝까지 말려서인지 어릴 적 머리가 지저분하게 풀린다고 엄막 꽉 물었을 때의 쨍한 느낌이 느껴졌다.     


‘좀 풀어야겠다.’ 짱짱하게 내 머리카락을 감싸고 있는 롤빗을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아니 돌아갔어야 했는데 비좁은 지하철에서 자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듯 롤빗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순간 당황해서 롤빗을 앞뒤로 흔드니 롤빗은 정수리 쪽으로 더 달라붙었다.

     

평온하게 심박수를 유지하던 나의 심장이 조금씩 강도를 높여 뛰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자기야, 응급상황이야. 응급상황. 빨리 와. 큰일 났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틈도 없이 소리 질러 남편을 불렀다. 집에서 일어나 봤자 큰일이 뭐가 있을까 싶은 남편님은 천천히 걸어왔다.     


“자기야, 롤빗이 안 풀려.”     


남편은 나의 말이 끝나기 도 전에 나의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는 롤빗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안 풀려? 무슨 애들도 안 하는 짓을 해.”      


긴장하고 걱정스러운 나와 달리 남편은 내 머리에 매달린 롤빗을 보고 살짝 흔들어 보았다. 살짝만 흔들었을 뿐인데 머리카락이 몽땅 빠져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남편은 머리카락 몇 가닥을 롤빗에서 떼어내는 것을 성공했지만 다 빼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는 비보를 전해주었다.     


‘그래 힘들수록 침착해야 해. 인터넷으로 우선 검색해보자.’


초록창에 ‘롤빗 머리에 엉켰을 때’를 쳤다. 아, 이미지와 함께 나와 비슷한 고난을 경험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단지 나랑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을 알았을 뿐인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검색 결과 상위 글부터 읽기 시작했다. 혼자 엉킨머리를 풀기 어렵기 때문에 미용실에 가서 자르기, 한 올 한올 빼내기, 롤빗 빗살을 빼내기 등등 여러 방법이 있었다. 도저히 롤빗을 달고 미용실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 번째 방법은 남편도 손을 들었기 때문에 빗살을 빼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천운인지 롤빗 만드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던 남편은 자신의 공구함에서 롱노우즈라는 연장을 꺼내왔다. 지금 생각해도 롤빗 만드는 영상을 찾아보는 남편의 고상한 취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남편은 한 땀 한 땀 정성스러운 바느질을 하듯 롤빗에 박힌 빗살을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많은 빗살을 고정된 자세로 빼는 게 힘든지 남편은 중간중간 어깨를 두드리며 열심히 빼냈다. 드디어 모든 빗살을 빼고 내 머리는 롤빗으로부터 광명인지 자유인지 모를 거대한 해방감을 맞이했다.     


‘내 생에 롤빗은 없다’를 외치면 빗살이 빠진 빗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몸통은 사라지고 빗살만 남은 자리에는 나의 머리카락도 한 움큼 빠져있었다. 빠지기도 하고 잘린 나의 머리카락, 지금 나의 앞머리이자 옆머리는 그날의 슬픈 사건을 알려주는 듯 짧은 길이를 자랑하면 꼿꼿하게 서있다.   

  

‘내 인생에 롤빗은 다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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