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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 Oct 23. 2024

프롤로그

우리가 제주 1년 살기를 선택한 이유

나는 서른이 다 되어 처음 제주로 관광을 왔다. 나는 그때 제주도만의 매력에 흠뻑 매료되었다.

어디로 가도 보이는 드넓은 망망대해의 바다, 도심의 높다란 건물에서 벗어나 더 넓고 높게만 느껴지는 파아란 하늘. 그리고 내 두 뺨에 느껴지는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 거기다 구멍 숭숭 뚫린 까만 돌들이 마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자신의 모습을 뽐내기라도 하듯 차곡차곡 쌓여 어우러진 모습까지.

내가 가본 몇 없는 휴양지와도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제주도의 자연이 주는 근사한 풍경들은 나에게 언젠간 살아보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런 내가 제주도를 다시 찾았을 때는, 나의 아이가 11개월 무렵이었다. 코로나 베이비인 2020년생 아이를 데리고 한참 차를 타고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고흥 녹동항이었다. 우린 그곳에서 ‘아리온 제주’라는 배에 차를 싣고 제주엘 다녀왔다.

이제 겨우 모유를 뗐을 뿐, 아직 젖병도 이유식도 떼지 못한 아이와 힘겹고도 대단한 여행이었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이 한정적이라 분유를 내려주는 기계인 베이비 브레짜를 비롯해, 아이가 먹을 음식들을 얼려 아이스박스에 담았고, 중탕할 수 있는 포트와 기저귀. 이가 늦게 나 종일 흘리는 침을 닦아줄 많은 손수건과 턱받이들까지. 빠뜨리는 것 하나 없이 굉장히 꼼꼼하게 챙겨 떠난 우리의 첫 장거리 여행이었다. 


겨우 돌도 안 된 아이 하나 데리고 떠나는 여행인데도 불구하고 뒤돌아 보이는 SUV의 트렁크에는 아이의 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이 많은 짐을 이고 지고 떠나기엔 배 타고 떠나는 제주가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린 결국 실행했다.


제주에 도착해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평화로를 달리며 보는 풍경은 마치 움직이는 액자를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마음이 일렁였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때 묻지 않은 억새는 또 한 번 자연이 안아주는 제주라는 이 섬의 매력에 매료되기엔 충분했다. 유독 파도가 높아 심하게 뱃멀미하던 그 순간의 힘듦이 한순간 깨끗이 씻기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짧은 일정으로 제주도의 동서남북을 모두 담기에는 불가능했다. 맛있는 음식을 모두 먹기도 불가능했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민한 아이의 낮잠 시간에 맞추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매일 숙소를 옮기는 열정을 불태우며 제주 느끼기에 돌입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제주를 느낄 만할 땐 이미 여행이 끝날 즈음이었다.


매일 선명한 무지개를 보며 떠난 우리 가족의 첫 제주 여행이라 그런가. 이동 중에만 소로록 비가 내리던 우리의 여행이라 그런가. 나는 그 순간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그날,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행복 가득한 우리의 미래 이야기로 말이다. 나는 그때 알았다. 우리의 앞날이 아이로 인해 굉장히 밝고 희망차다는 것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푸릇하고 달콤한 제주의 냄새와 우리의 따뜻하고 행복 가득한 이야기들이 모여 여러 개의 비눗방울을 만든 그날을 잊지 못한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그렇게 우리 셋은 제주와 인연이 되었다. 아니, 인연을 맺었다. 우리는 본능처럼 자연스럽게 매해 제주를 느끼기 위해, 그날의 희망을 또 보기 위해 제주엘 방문했다. 그렇게 점점 더 우리는 제주를 원했고 제주의 삶을 원했다. 결국 제주를 더 가까이에서 만끽하기 위해 2024년 제주로 일 년 살기를 왔다. 우리는 이제 그토록 바라던 제주를 일 년 동안 품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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