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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 Nov 13. 2024

시작부터 난관인 우리의 이사 이야기

들어는 봤는가? 가정집 택배 이사

보통 육지에서 제주도로 입도하면 어떻게 이사를 하는 걸까? 육지에서 섬으로의 이사는 포장 이사도 배로 떠난다는데, 우리 1년만 살 건데… 도대체 어떻게 가는 게 현명한 방법일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 아이의 유치원은 11월에 신청한다. 유치원 신청 기간을 앞두고 우리는 제주에 와서 미리 유치원 몇 곳을 면담했다. 육지에서 얼마 없는 정보를 모아모아 유치원 몇 군데에서 상담하고 육지에 돌아와 마음에 드는 곳들을 고민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1순위 한 곳만 마음에 쏙 들었지만, 1순위만 했다가 떨어지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1순위와 2순위 두 곳을 골랐다. 1순위 유치원은 정말 합격하면 무조건 보내야 한다고 명성이 자자한 유치원이었는데 정말로 운이 좋게도 1순위에 합격했다. 그 결과를 알고도 무슨 자신감에 이렇게 여유가 넘쳤는지, 1월 말에 일본 여행까지 다녀오고 몇 일 후에서야 아이의 유치원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맞춰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할 겸 집도 알아볼 겸 제주에 갔다. (2월 초) 여행도 이렇겐 안 다니겠다 싶은 우리 집은 동전을 던져 앞이 나오면 다음 날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말 운이 좋게도 바로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 계약을 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2차 오리엔테이션 바로 전(2월 중순) 아이의 어린이집 졸업식을 끝마치자마자 제주도로 이사를 왔다.


우리는 집 계약을 마치고 이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오랜 고민의 시간이 없었다. 집을 계약하고 당장 2주 후에 이사를 해야 했으니까. 그때 우린 조금이라도 비용을 절감해 보고자 택배 이사를 선택했다. 큰 가구는 이삿짐 센터를 불러 시골 전원주택에 가져다 두고(1차 이사), 무조건 필요한 가전인 세탁기는 그곳에서 새로 사주기로 하셨고, 냉장고는 당근마켓에서 사는 걸로 가닥을 잡았다. 나는 제주에 방문할 때마다 당근마켓을 검색해 봤는데 제주도라는 섬의 특성이 있어서인지 의외로 중고 시장에 세탁기와 냉장고가 매우 많았다. 그래서 큰 가전에 대한 고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외에 커다란 것들(책상, 의자 등)은 화물 택배로, 나머지는 일반 택배로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오빠는 짐이 얼마나 되겠냐며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지만, 나는 집을 둘러보며 이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 시골에 놓고 갈 짐을 선별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어떤 짐을 포기하고 놓고 갈 것인지. 어떤 짐을 가지고 갈 것인지. 고민, 또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우선 우리에게는 주어진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하는 목표가 있었다. 목표가 있으니 결국 해냈지만,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이사였다.


매일 포장을 하고 또 포장을 했다. 내가 아이의 책을 포기하지 못해 많이 가지고 왔는데, 그중 몇 질은 당근으로 처리하고, 또 몇 질은 이웃집에 나눔을 하고 했다. 매일 당근마켓에 아이의 장난감을 올리고, 빠르게 처분이 되지 않으면 아파트 커뮤니티에 나눔을 올려 처분을 하곤 했다. 이렇게 나누고 또 나누며 부피를 줄이면서도 꼭 가지고 가기로 결정된 짐들은 매일 포장했다. 그저 기계처럼 매일 박스를 쌌다. 책만 한가득 담으면 무게 문제에 걸려 옷과 함께 담아 겨우 무게를 맞추었다. 15kg이 넘으면 택배비가 만 원이 넘어가서 체중계에 올려 무게를 재고, 무게와 내용물을 기록하며 포장을 했다.


박스를 포장하고 포장해도 집은 바뀌는 게 없었다. 결국 몇 개를 포장했는데도, 집이 바뀌지 않는 걸 깨달은 오빠도 매일 짐 싸기에 돌입했다. 그렇게 남은 시간 나는 매일 매일 짐을 싸는 데 썼다. 그 와중에 설날이 있어 서울에도 다녀왔다. 이제 작별이니 자주 만나던 엄마들과 식사도 했다. 어린이집 모임과도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짐을 쌌다. 당근을 했다. 나눔을 했다. 또 짐을 쌌다.


정말 아무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은 게 바로 택배 이사다. 육지 생활을 정리하며 주워 담는 그 시간에 나는 많은 걸 깨달았다. 정말 힘들어서 두 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도 않은데, 그나마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한 집에만 머물면 잘 안 쓰지만 버리지 못해 쌓이고 쌓이는 짐들이 많은데, 확실히 그런 것들이 싹 정리가 되었다. 덕분에 우린 또 한 번 평소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사실 우리는 이사 날도 확실히 정하지 못하고 집만 계약하고 왔다. 다행히 신축이라 대략적인 날짜만 말씀드려도 괜찮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육지에 있던 아파트도 급히 전세를 내놓았는데, 다행히 이사 날짜와 딱 맞게 들어오려는 사람을 구했다. 그렇게 운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마치 우리를 제주에 갈 수 있게 길이라도 닦아주는 듯이.


그리고 택배 이사를 선택 한 우리는 그만큼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과연 우리의 선택이 옳았던 것일까. 우체국에 가서 박스를 사고, 또 포장을 하고, 금세 부족해져서 또 박스를 사고, 또 포장을 하고.. 방 한 켠이 전부 택배로 쌓여갔다. 그런데도 여전히 박스가 부족했다. 계획한 대로 분류별로 착착 포장하는 일은 애초에 무게 때문에 실패해서 뒤죽박죽 섞여 버렸고, 차에 싣고자 했던 것들도 모아보니 많은 것 같아서 포기하고 택배 상자에 담고 또 담았다.


그 와중에 시골로 큰 짐을 보내는 이삿짐센터도 알아보고 이사 날도 정했다. 우리가 시골로 큰 짐을 보내는 이사 날은 경주에 생전 오지 않던 눈이 왔다. 우린 분명히 제주도에 가서도 잘살 거야. 이렇게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환영하듯이 눈도 오고 말이야. 비록 이삿짐센터의 어설픈 이사에 할 말을 잃었지만, 눈을 보며 신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를 보니 앞으로 우리의 제주 생활이 눈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우린 그곳에서 또 행복하겠구나.



D-DAY

아이가 등원했다. 오늘은 아이의 어린이집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예약해 둔, 아이가 받고 싶어 하는 노란색의 조그마한 졸업식 꽃다발을 찾으러 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아직 포장하지 못한 남은 짐들과 시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우리 오늘 졸업식 끝나고 배 타러 여수에 가야 하는데, 아직도 짐이 이만큼이나 남았다니?’ 오빠와 나는 더욱더 빠르게 움직였다. 이날 시간 안에 못 끝낼까 봐 정말 초 단위의 빠른 결정을 했다. 결국 차에 싣고 가려고 남겨둔 짐들이 차에 다 들어가지 않아 급히 우체국에 가서 박스를 더 사 왔고, 포장을 했다. 그러고도 박스에 들어가지 않는 약간 큰 애매한 짐들은 우리를 보러 온 친정엄마에게 주었다. 시골집에 가져다 두라고. 그렇게 어영부영 어떤 짐을 어디에 싼지도 모르게 담아 넣고는 아이의 어린이집 졸업식에 참여했다. 그리고 자주 만나던 친정엄마와 저녁을 먹고 여수로 향했다. 우리는 밤새 배를 타고 제주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 이사의 반은 끝이 났다. 새벽에 제주항에 도착했고, 제주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새 보금자리에 도착을 했다. 차에 있던 이불을 펼쳐 잠깐 누워 쉬는 사이. 벌써 어마어마한 양의 1차 택배가 집에 도착했다. 이거. 싸긴 쌌는데. 대체 언제 다시 다 풀어? 택배 이사는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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