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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내자 Dec 22. 2022

나의 병원 생활 일지

너는 아프지만 엄마는...




팔을 다친 아이가 오늘 퇴원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제 미리 집에다 짐도 갖다 놨고 아이 입을 옷도 다 챙겨 왔다.

같이 방 쓴 분들께 "쾌차하시길 바랄게요. 저희 먼저 갑니다!" 인사말도 준비해놨는데 아침에 눈 뜬 아이의 몸이 뜨끈뜨근하다.

5살 때 편도수술 한 이후로 난적 없는 아이의 고열. 39도를 훌쩍 넘겼다.

걱정은 이내 현실이 되었다.


"어머니!! 아이 A형 독감이에요."


아이가 독감에 걸렸다! 요즘 독감이 유행이라더니 어쩜 이렇게도 유행을 잘 쫓아갈까.

무엇보다 신기한 건 병원에만 있었는데 어떻게 독감이 걸리냐는 것이다. 병원에서 너무 싸돌아다녔나.


내일부터 학교에 간다고 좋아했던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63kg 4학년 아이는 아직 애기다. 친구들이 보고 싶고 축구가 하고 싶고 학교 급식이 먹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나는 어이가 없는 와중에 웃음이 나왔다.

일단은 또다시 발생한 예측 불가한 상황이 재미있기도 했고, '앗싸! 글감 생겼다!'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의 액땜 일지>를 발행하고 너무 투덜거렸나 싶어서 해피한 글 좀 써서 올려야지 하던 차에 이렇게 좋은 글감을 나에게 던져주다니.

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님! 성모마리아 님! 감사합니다!


물론 아이가 아픈 것은 마음이 아프다. 차라리 내가 아프면 좋겠다는 마음은 변함없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믿고 있다. 충분히 이 시련과 고난의 시간을 잘 견뎌낼 강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누구보다도 건강한 심신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알기에 큰 걱정을 안 한다.






병원 생활 며칠 하다 보니 아이가 아닌 이곳의 환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와 내가 있는 병실은 5평 정도 되는 4인실 802호. 802호는 남성들만 있는 병실이다. 

처음에 이곳에 배정받고 들어왔다가 누워있는 남자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 여기서 어떻게 며칠 밤을 보낼 수 있겠는가. 환자는 아이인데 보호자인 내가 불편해서 병실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아이가 이미 11살이고 등치도 커서 다른 여자 병실에서 불편해할 것 같다며 난감해하는 간호사의 표정을 보고 체념했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들어온 이곳은 마치 절간 같다. 너무 조용해서 가만히 있으면 옆 침대 아저씨의 숨 쉬는 콧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이는 4인실에서 제대로 용변처리를 못했다. 혹시라도 민폐가 될까 봐 화장실 칸이 많은 다른 층으로 가서 편하게 큰 일을 볼 정도였다. 차라리 티브이 소리라도 들리면 나았을까? 최근에 지어진 병원이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각 침상마다 티브이가 놓여있는데 전원을 켜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어폰을 꽂아야 제대로 시청할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첫날에는 어떤 작은 움직임과 소리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말할 때도 속삭여야 하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것이 있다.

이럴 때 나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귀마개'. 나와 세상을 단절시켜주는 효자 녀석.

귀마개를 낀 순간, 빠른 속도로 내 세상으로 집중할 수 있어 어딜 가더라도 노란색 폴리우레탄 녀석들을 데리고 다닌다.


아이를 재우고 귀마개를 낀 후 준비해온 작은 스탠드를 켠다. 그리고 커튼 속 1평 남짓한 공간에 생기는 나만의 시간 속으로 몰두한다.


그리하여 병원에서 책을 많이 읽었다. 아이 입원시키면서 그동안 읽고 싶었지만 자꾸 미뤄뒀던 책들을 몇 권 들고 왔는데 금세 완독했다. 그것뿐인가? <나의 액땜 일지>도 병원에서 쓴 거다.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내가 가사 노동에서 해방됐다는 점이다.

병원에 있으면서 아픈 아이와는 다르게 나는 몸이 상당히 편한 것을 느꼈는데 내가 매일 해왔던 일을 하지 않아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은 나에게 매 끼니 걱정을 안 하게 해 줬고 청소도 알아서 다 해줬다. 아이 환자복도 더러워지면 새것으로 바로 바꿔주면서 빨래 걱정도 덜어줬다. 


아! 이것만 안해도 살기 편하구나.


집에서는 온갖 집안일이 눈에 밟혀 글 하나 쓰기, 책 한 줄 읽기가 힘들다. 엄마들에게 글쓰기가 수월한 시간은 오롯이 혼자 있을 때밖에 없다. 그러나 더러운 집구석이 식구들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하는 사람은 그마저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노트북을 들고 조용한 카페를 찾아간다. 

커피숍이 아니면 어떤가? 나에게 생긴 이 귀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지.

비록 커피 향 나는 카페는 아니지만 나는 병원에서 근사한 밤을 보내고 있다.



아들아, 엄마는 밤만 되면 퇴원하기가 싫어진다. 어쩜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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