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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내자 Dec 25. 2022

인과응보, 자업자득

남편은 날 보고 이렇게 외쳤다!



남편은 간지럼을 무진장 탄다.

나는 여태껏 그렇게 간지럼을 많이 타는 사람은 처음 봤다.

연애할 때, 내 눈높이 조금 아래에 있는 남편의 배꼽을 무심하게 툭 찔렀는데 그 큰 등치의 남자가 바로 쓰러졌다. 깔깔깔 켁켁켁 숨이 넘어가면서 말이다.

그 남자의 배꼽이 내 놀잇감이 된 건 그때부터였다.


나는 배꼽을 찔러도 간지럼을 타지 않는다.

그냥 찌르면 찌르는 거지 뭐 어떤 느낌도 없다. 옆 갈비뼈 부분을 긁으면 좀 간지럽긴 하다.

근데 남자는 아니다. 배꼽뿐만이 아니라 귓구멍, 콧구멍, 겨드랑이, 손바닥, 허벅지, 손톱 사이 어디든 살짝만 찌르고 긁어도 자빠진다.


나보다 몸무게가 두 배 이상 나가는 사람을 넘어뜨릴 수 있는 유일한 무기.

남자는 그 이후로 내 앞에서는 항상 두 손을 모아 배 위에 올리고 공손한 자세로 있게 되었다.




하루는 남자의 배꼽을 찌를 타이밍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목표물을 향해 손가락을 돌진했다.

엇?! 분명 이 위치가 맞는데 뭔가 막힌 듯이 손가락이 튕겼다.


훗! 남자의 비웃음.

어쭈? 이것 봐라?


그 즉시 콧구멍과 겨드랑이를 동시에 공격하여 그를 자빠뜨리고 옷을 들췄다.


이런......


내 목표물에 X자로 붙여진 넓적한 투명테이프가 까꿍 하며 날 반기는 게 아닌가?


하도 찔러대는 여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집에서 붙이고 왔다고 한다. 헐.






그렇게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 남자와 똑같이 생긴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건강하게 잘 컸다.

모유도 잘 먹고 잘 웃고 잘 놀고 하여간 아빠랑 똑 닮은 녀석이었다.


아들은 돌이 지나고 생명줄과도 같던 엄마의 모유를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이제 밥 먹을 때가 되었다나? 어쨌다나?


엄마의 풍성했던 가슴이 쪼그라들고 좋았던 젖냄새도 사라질 때 즈음부터 아들은 더듬더듬 엄마의 몸을 훑었다.

필시 아련한 추억과 옛 향수를 느끼고픈 본능적인 행동이었으리라.


그렇게 정착한 곳은, 엄마의 배꼽.

엄마는 배꼽을 찔려도 간지럽지 않기에 기꺼이 아들에게 배꼽을 내주었다.


아들은 잠이 들기 전, 엄마의 배꼽을 찾았다.

다른 집 아이들은 엄마의 머리카락, 혹은 쇄골, 팔뚝 안쪽살, 아님 엄마의 배를 만지며 잠을 잔다는데

우리 집 아이는 무조건 배꼽이었다.


어렸을 때엔 손가락도 작고 잠들면 바로 빼면 되었기에 그저 귀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나 11살인 현재까지도 아들은 엄마의 배꼽을 사랑한다.

자고 일어나 뒤에서 살포시 엄마를 안음과 동시에 손가락은 배꼽으로 향한다.

지금은 등치도 나보다 크고 손가락 발가락도 통통해져 배꼽에 아이의 손가락이 들어오면 사이즈가 딱 맞는다.


배꼽을 찌르고 있던 손가락을 뺄 때, "뽕!"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약간 오버에서 얘기하자면 숟가락으로 사이다병뚜껑 따는 소리 같다고나 할까?




"야! 그만 만져~! 이제 아파!"

"힝~ 엄마! 좋은 걸 어떡해~~!"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얘기한다.



"인과응보, 자업자득이다. 이 여편네야!!"



배꼽을 사랑하는 자와 배꼽을 사수하는 자(11년 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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