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힘내자 Feb 05. 2023

볼펜 똥은 여기에 닦아야 제 맛

그것은 책과 더 친해질 거라는 신호



책에 밑줄을 그으며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를 위해 독서를 하면서 왜 그렇게 아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되팔 것을 염두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여태껏 되판 책 보다 사들인 책이 더 많다는 사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살펴봤더니 아주 깨끗하다.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 어떤 생각으로 읽었는지 알 수가 없네.

희미하게 '아, 이 책 재미있었어'라는 기억만 가지고 있는 게 싫어서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형광펜과 볼펜, 그리고 포스트잇'

책을 읽을 때 꼭 필요한 것들이다. 좋았던 문장에 밑줄을 긋고 더 기억하고 싶은 구절엔 형광펜을 칠한다. 그러다가 내 생각을 더하고 싶을 때 포스트잇에 메모해서 붙인다. 그러다 또 무언가가 생각이 날 때 샤프로 책 구석구석에 메모를 남겨 놓는다.


나는 지금 책 세상으로 좀 더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흔적






책 속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인상 깊은 문장이 생겨 밑줄을 열심히 그었더니 볼펜에 똥이 생겼다. 똥을 닦고 싶은데 주변에 닦을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책에 빙그르르 돌려 닦고 싶지는 않다. 일어나서 화장지를 가져오면 좋으련만 엉덩이를 떼는 게 귀찮아서 결국 옷소매에 닦았다. 수년 째 겨울에 입고 있는 생활복에 말이다. 한두 번일 때에는 티가 나지 않더니 어느 순간 잉크가 많이 배어 있었다.

나의 이런 행동을 깔끔한 사람들은 질겁하겠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볼펜 똥의 흔적이 가득한 옷소매




그러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예전의 나라면 이해할 수 없었을 행동이기는 하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이 세상에 '절대' 안 되는 보편적인 일들은 없는 듯싶다.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건 범죄가 아니잖아.


책에 빠르게 접속하기 위해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변한 옷에 볼펜 똥 닦기.


나는 이것을 나만의 신호라고 여기기로 했다. 볼펜을 옷소매에 누를 때마다 느껴지는 작은 눌림이 늘어날수록 나의 앎 또한 깊어질 것이고 책과 사이가 더 돈독해질 계기가 될 신호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걸어보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