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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내자 Feb 15. 2023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고전을 '씹뜯맛즐'한 사람의 이야기



고전 좋아하는 사람 손?

고전이라고 하면 우리는 겁부터 먹는다.

아니, 그런 걸 어떻게 읽어. 그런 거 읽는 거 아냐!

숙련된 독서가가 아닌 이상 고전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고전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내 마음을 움직였던 설명은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 수준에 딱 맞는 설명이다. 베스트셀러라면 일단 기본값은 하고 가는 거니까 믿고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말이다.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작가님의 책 <자기혁명>에서는 고전을 이렇게 말했다.


고전은 살아남은 책이다. 우리가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은 책을 잘 읽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고전은 이미 오랜 기간 검증되고 살아남아온, 말하자면 감정평가를 마친 책이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도 수만 권의 책이 발간되는 와중에도 계속 전해지며 읽히는 책은 반드시 그만 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고전을 소홀히 하는 것은 인류의 지혜를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는 것과 같다. 특히 아이들의 책 읽기 교육에서 고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p.298>


아... 고전을 소홀히 하면 인류의 지혜를 쓰.레.기.통에...처박는다니!

더 이상 말하면 입 아프겠네.

이렇게 다독하고 숙련된 독서가들 모두 고전 읽기를 권하고 강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싶다.


그래! 고전! 나도 한 번 읽어보겠다!




그렇게 내가 제일 처음으로 도전한 고전이 <죄와 벌>이었다.

약 18년 전, 중국에서 유학할 때 옆방 동생이 아주 재미있다며 읽던 책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벌이었고 네가 읽는다면 나도 읽겠다 하여 사놓은 게 10년이 넘었고, 나는 그동안 아이도 낳았고, 책은 누레졌고...


그렇게 책장에 꽂혀있던 죄와 벌이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이유는 채사장의 <열한계단> 때문이었다.


채사장은 고등학교 때 심심해서 읽기 시작한 <죄와벌>로 깊은 내면의 얼음을 깨고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죄와벌>읽고 내면의 얼음도 깨고 지대넓얕도 쓰고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졌다 이 말이지? 그렇게 좋은 책이라면 꼭 읽어보자, 채사장도 읽다 자고 그랬다니까 나도 그렇게 읽어보지 뭐 하고 시작한 것이다.


며칠에 걸쳐 어마어마한 페이지 수를 다 넘기긴 했지만 주인공 로쟈나 소냐의 심리는 음... 어려웠다.(그래서 난 채사장 같은 사람은 못되나 봄)

내용도 내용이지만 러시아 소설의 최대 난관은 이름이 아니던가? 본명도 길고 길어 입에 잘 안 붙는데 애칭 별칭, 상황에 따라 관계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 달라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에 등장인물이 몇 명인지 무척이나 헷갈리는 상황이 수시로 온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면서까지 러시아 고전을 읽어야 하나, 에잇! 이런 책 안 읽어도 돼, 한국 소설도 읽을 게 널렸어라는 당위성을 찾게 된 순간, <죄와 벌> 같은 책은 컵라면 익힐 때 뚜껑 위에 올려놓기 딱 좋은 책이 된다.




이런 세계문학의 최상의 난이도에 있는 러시아 문학을 '씹뜯맛즐'한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 하면 믿을텐가?


아 물론, '책은 도끼다'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풀어헤쳐놓으신 박웅현 작가님도 이미 러시아 문학을 '씹뜯맛즐'하신 분이긴 하지만 그분보다 도제희작가님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퇴사 직후 혼란스러운 마음을 잡기 위해 도스토옙스키 책을 읽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불안정한 상황을 돌이켜보고 왜 나는 아직도 미완성인 인간인 건가, 왜 나는 이모양인가를 생각을 했다는데...


아니 뭐, 우리가 힘들 때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고 앞날을 도모할 수 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나 힘들다고 러시아 문학을 잡지는 않는 게 보편적이란 말이다. 어떤 이유로 러시아문학 그것도 도스토옙스키를 잡았는지 읽어보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아 책을 잡았다.(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이렇게나 길다니....)





도제희작가는 도스토옙스키 <미성년>을 읽으며 돈과 내적 품위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고,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이야기한다. <노름꾼>의 가정교사를 보며 우아하게 을이 되는 법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158p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법'이었다.


살면서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제목이 주는 끌림을 느꼈을 것이다.

회사에서든 연인사이이든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지만 사람 일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나?

한마디 말실수로, 어리석은 행동으로, 이기적인 고집으로 공공의 적이 되고 미움을 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보니 이런 제목이 훅 끌리지.


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 <백치>에 나오는 주인공 미쉬낀 공작의 행동과 언행으로 말해주는 그 방법이라는 것이 바로 '솔직함'과 '천진함'였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라 솔직해진답시고 무식하게 아무것도 몰라요? 나도 몰라요 헤헤~ 하며 멍청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솔직한데 너는 어때? 라며 상대방의 약점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점에서 무릎을 쳤다.


진정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나의 생각과 감정이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사리분별을 할 수 있을 만큼 나를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이야, 고전 속 주인공의 삶이 우리네 인생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우리와 아주 가까운 이야기이다!!

그냥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고전 좋다, 고전도 만만하다, 재미있다 씨부리고 다녔던 내 주둥이를 치고 싶을 정도로 본인의 상황에 맞게 고전을 읽어낸, 그리하여 책까지 써낸 도제희 작가님.


부럽다.(이것이 내 진심!!)




"솔직함은 그 내용이 자기 자신일 때 빛을 발한다.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도 호감을 얻는 방법이겠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용기에 타인의 마음은 더 크게 움직이지 않을까. 상대에게 자신도 진심을 내보여도 안전하겠단 느낌을 주니 말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잘 알 것, 그런 다신을 받아들일 것, 솔직함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둘 것." 1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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