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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내자 Feb 12. 2023

자기혐오를 넘어서는 글쓰기

글쓰기를 하는 이유


나는 종종 자기혐오에 빠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처한 현실에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객관적인 시선이 드리워지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자기애'가 생기는 게 아니라 '자기혐오'에 빠진 횟수가 더 잦아진다.


나라는 인간의 나약함, 현실의 남루함, 도돌이표 같은 일상의 끝에 찾아오는 고독과 외로움,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경쟁의 잣대로 후려치는 가혹함 등이 나를 자기혐오에 빠지게 한다.


나는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단할까, 내가 바라는 것들이 이상적인 꿈에 불과한 것일까, 왜 저 사람은 고민도 없고 행복해 보이기만 할까 수없이 생각하고 비교하고 괴로워했다.


그런 시간들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불안감을 상승시켰다. 사는 게 고달프니 마음이 불안하고, 불안함이 가중되 삶의 고달픔이 더 다가왔다. 돌고 돌아도 제자리인 뫼비우스의 띠였다.




그런 날들의 반복 속에서 문득 내가 자기혐오에 빠지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현실의 팍팍함을 느끼고 난 후부터 생각이 많아졌고(코로나 이후,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생각들은 달리는 시간을 멈춰 세우는 버튼을 누르게 했다. 두려움을 안고 시간에게 질질 끌려가기 싫어 엉덩이를 빼고 뒤를 자꾸 돌아봤다.



자기혐오에 빠진다는 것은 스스로를 들여다본다는 말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자주 들여다보니 나를 아끼고 싶은 애틋함이 생기더라. 불안함에 두려워하는 내가 불쌍해 보이더라. 나를 좀 더 사랑해 주면 안 될까.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경청자'가 되어주는 게 어떠니.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너는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운다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이 말이 나를 '각성'하게 하고 '성찰'할 수 있게 해 줬다.(각성과 성찰이 자기혐오의 결말이라면 자기혐오도 할만한 것이 아닐까)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고 혼란스러워야 사유가 발생한다"라고 했던 은유작가의 말처럼 지금 흔들리는 내 마음이, 자기혐오에 수시로 빠졌던 그 마음이 나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음을 고백한다.

괴롭고 힘든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 그 누군가는 바로 '글 속의 나'라는 걸, 누구보다 나를 잘 달랠 수 있는 사람은 '나'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글을 쓰며 '대인배라도 되는 듯한 그 착각'(은유 '다가오는 말들 p.83)으로 나를 너그럽게 바라봐 줄 것. 그래서 내 인격의 최상을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더 이상 자기혐오를 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노트북을 켠다.



사진 출처 - 모 중학교 2학년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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