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

계절성 우울 증후군 10

by 하란

갑자기 겨울이다

하긴 12월을 가을이라 우기기엔 12월은 너무도 겨울스러우니 갑자기가 아닌 원래대로가 더 맞겠구나.


20살에 만나 함께 기숙사에 있던 친구와 제주도를 다녀왔다. 나름 25년 된 친구이지만 사실 거리도 멀고 하는 일도 다르다 보니 몇 년에 한 번씩 보는 게 다였던지라 이번 여행이 어떨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편안하게 무심한 친구의 성격은 그대로였고 그저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고 친구의 성격처럼 편안하고 조금 무심한 여행이 되었다.

다만, 제주엘 가니 봄날의 제주가 떠올랐다.

유난히도 들떴던 봄날들이.

그리곤 '들떴었던 만큼 이번 가을이 깊었구나' 하고 뭔가 납득이 되어버렸다.


작년은 힘든 겨울과 여름을 보내고 봄엔 종주를, 가을엔 횡단을 하며 힘듬이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마냥 걸었기에 다시 온 겨울은 안정되고 편안했다.

그리고 다시 또 찾아온 봄. 유난히도 다정스러워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일들이 많았고, '다정도 병인 양' 다정이 깊어져 눅진한 여름을 보냈다.

그러하니 이 가을의 깊은 낙하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봄의 제주와 아직은 가을의 제주

제주에 갈 때 그리 두껍지 않은 코트만 하나 챙겨 갔는데 3일은 덥기까지 해 입을 일이 없더니 11월 마지막 날 저녁이 되자 겨울을 예비하는 매서운 바람에 코트를 입어도 무용지물.

그리곤 12월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은 조용히 내려온 세상을 덮어버리는 눈처럼 나를 가만히 덮어주고 봄은 피어나고 여름은 자라나, 그리고는 모두를 떨어뜨려 내는 가을이 오리라.

원점이다.

아니 영점이다.

같은 계절의 반복이나 조금씩의 차이는 있으니,

-그 차이는 성장이라고 굳건히 믿는다.

원점이 아닌 다시 또 한 계절을 살아내기 위한 영점 조정이다.

그리고,

나의 우울은 전두엽의 문제가 아닌 '계절성 우울 증후군'이 확실하기에,

가을과 함께 이 우울을 끝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맘은 반숙 계란처럼 무르고, 불면의 밤은 깊지만

이젠 그것마저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 겨울을 맞이한다.

그리고는

무해하고 단정하게 이 겨울을 나고 다시 새 계절을 맞이하길

아니 맞이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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