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맡아하는 일이 진행이 좀 애매하게 되어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그게 다는 아닌 것 같고, 아마 설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시가에 가서 명절 음식을 하고 차례를 지내고, 20년을 해온 일이라 남의 집(?)에 간다는 불편함도 왜 가서 나만 일해야 하냐는 부당함도 닳아버려 그저 마음은 뭉툭 뭉툭한데, 왜 이리 여전히 명절 전엔 이렇게 가라앉는지.
생각해 보면, 내 기억 속 명절은 스산한 흑백으로 기억된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추석,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 설날, 절기의 영향도 있겠지만 어쨌든 즐거운 느낌은 아님이 확실하다
최초의 명절에 대한 기억은 강원도 산골에서 대구에 있던 큰 집으로 명절을 쇠러 갔던 기억이다. 스냅사진처럼 장면 장면만 남아 있는 기억 속 6살에 돌아가신 엄마의 모습이 있는 걸 보니 4~5살이나 되었을 무렵인 듯하다. ‘아파트’라는 생소했던 공간에 대한 장면, 그리고 내 기억 속 유일한 가족 소풍의 장면.
강원도 영월 산골에서의 대도시인 대구행이었기에 명절 겸 가족 나들이의 기회가 아니었겠나.
달성공원 입구의 알록달록한 풍선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던 기억, 달랑이던 쓰레기통을 기웃대다 그 속에 처박혀 버둥대던 기억이 마치 길을 가다 어느 시골 사진관에 전시된 오래된 사진을 보는 듯 생경하다.
그래 그때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감정의 기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사진관 유리 너머 사진들은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따뜻한 풍경이니.
그 이후 힘들어진 가정 형편과 아마도 그에 기인했을 듯 화목할 수 없었던 가족 관계.
초등학교 시절 아직 친척들과 왕래가 있던 때는 단칸방과 큰 집 아파트의 차이 만큼의 주눅으로, 왕래가 끊어진 시기엔 서먹한 긴장이 감돌던 집안 분위기와 아버지의 술주정과 큰오빠의 다툼 사이에서의 눈치로,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외며느리라는 자리에서의 ‘부당한 노동’의 기억일 뿐.
지금의 명절은 모난 마음은 뭉툭해졌으나 딱히 즐거울 것도 없는 여전히 무채색의 시간이지만, 다만 어린 시절의 명절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불행의 흑백 사진 속 선명한 컬러 사진이 몇 장 끼워져 있는 듯한데, 그건 바로 명절 음식에 대한 기억들이다.
겨우 밥을 먹고 살 정도의 가끔은 그게 어려울 정도의 가난의 시간이었지만, 명절 음식만큼은 이상하리만치 격식까진 아니어도 형식을 갖추었다.
명절의 시작은 고무대야 가득 불려진 쌀.
설날엔 가래떡을 뽑아와 따끈하고 쫄깃한 떡을 조청에 찍어 먹고 하루가 지난 뒤엔 반은 떡국용으로 어슷하게 썰어내고 반은 떡볶이와 간식용으로 길게 썰어 놓았다. 떡을 써는 아버지와 큰 언니 옆 난로 위엔 어슷하게 썰어낸 떡이 구워지던 풍경.
추석엔 소는 넉넉히 채우지 못해도 쌀가루를 익반죽해 송편을 빚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솔가지 위에 올려 찌던, 콩 송편이 아닌 달달한 흑설탕이 들어간 깨가 들어간 송편을 물었을 때의 행운의 기쁨.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설날이나 추석 어느 한 명절엔 동네를 찾아 순회하던 뻥튀기 트럭으로 쌀을 가져가 튀밥을 만들고 그냥 먹을 것은 비닐에 덜어 담고 나머지는 물엿에 버무려 땅콩을 조금 섞은 뒤, 큰 판에 놓고 평평하게 굳히고 사각형으로 반듯반듯 잘라내어 옥고시를 만들어 오던 기억.
한 동안의 주전부리가 될 그 큰 비닐자루들을 들고 집으로 가던 길이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
또 차례가 끝나면 가장 먼저 집어 들던 옥춘당과 곶감이 주던 조바심.
전의 고소한 기름 냄새와 평소와 달리 풍성한 과일들.
지금도 여전히 명절이면 준비되는 음식들 이건만 가래떡과 송편은 시장의 떡집에서 사 오면 그만일 뿐인, 그저 명절엔 있어야만 하기에 있을 음식일 뿐이고 차례가 끝난 뒤 조바심 내게 했던 옥춘당과 곶감은 초콜릿과 온갖 다디단 디저트가 넘쳐나는 지금엔 한동안은 식탁 위에 한동안은 냉동실에서 그리고 다음 명절이 다가오면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옮겨 다니는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풍성해졌지만, 빛이 바래버린 명절음식은 컬러에서 흑백이 되어 버렸다.
시가에 가는 길, 마트에 들러 잘 먹지 않을 사과, 배는 딱 세 알씩만, 그래도 손이 갈 샤인머스캣과 딸기는 넉넉히 살 것이다. 전을 부치고 나물을 하고 떡국을 끓이고, 푸짐한 명절상을 차리겠지만 늘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나와 같은 사람에겐 참아야 할 곤욕스러운 식욕일 것이고 화려한 입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겐 그저 식상한 한 끼일 것이다.
즐거운 기억이 없는 명절이었지만 그나마 어린 시절의 명절을 조금은 기대하게 만들었던 건, 명절음식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일상에서의 가난이라는 결핍 덕에 가능했을 일이다.
지금은 명절을 休日 이외의 의미로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약간의 우울과 답답함을 털어내고 어린 시절 명절 음식의 형형색색을 끌어와 본다.
이번 설날엔 해야 할, 늘 하는 명절 음식들 사이로 먹고 싶은 컬러의 음식을 하나 슬쩍 끼워 넣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