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이런저런 잡스런 꿈속을 오가던 얕디얕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그저 이불속에서 가만히 깨어 있기를 한참, 밤새 쌓이다 마지막 한 방울이 똑 떨어져 넘친 듯 갑자기 느껴진 요의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볼 일을 보고 손을 씻고 거울 속 푸석한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다.
근래 잠을 잘 자지 못해 피부가 푸석한 건 둘째 치고, 아직은 옅지만 기미는 야금야금 제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었고 무엇보다 깊어진 팔자 주름과 주름 옆 볼살의 아래로 쳐져 넓어진 모공에 가슴 한 켠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당연한 일.'
가만히 입 밖으로 되뇌어 보지만 슬픔과 조바심이라는 뒷맛이 씁쓸히 남아 입 속에 맴돈다.
며칠 전 이젠 누가 뭐라 해도 중년임을 어찌할 수 없는 나이인 50이 되었다.
딱히 눈에 띄게 예쁜 곳도 없지만, 눈에 띄게 못생긴 것도 없는 무난한 얼굴과 성격,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의 영향으로 몇 번의 연애를 거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무난히 살아왔으리라.
'그럼 된 일.'
결혼 이후 내내 집과 회사를 오가며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건만, 그땐 이미 아이들은 나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곳으로 바삐 제 갈 길들을 가고 있었고, 회사를 가지 않아 한가해진 아침은 이젠 무료하기까지 하다.
세안을 하고 화장대에 앉아 딱 하나 있는 화장품인 영양크림을 톡 찍어 얼굴에 바르다, 멈칫하고는 손을 다시 크림통으로 가져가 양껏 푹 떠내어 얼굴에 발랐다.
포트에 물을 끓여 며칠 전 딸이 선물로 받아왔다며 가져다 논 차세트에서 피부에 좋다는 루이보스티백을 하나 꺼내어 넣고 소파에 앉으니 까만 티브이 화면 속 번들거리는 얼굴이 보였다.
티브이를 켜고 무심히 채널을 돌린다. 무슨 프로그램인지 알 수도 없게 빠르게, 그저 습관적으로 채널을 돌리다 홈쇼핑 채널에서 손이 멈춘다.
정확하게 하는 일이 뭔지 알 수 없으나 연예인인 것은 확실하고 꽤나 오랫동안 티브이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비춘 연예인의 반질반질한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여러분, 보이시죠? 이거 쫀쫀한 거?! 제가 몇 달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랐잖아요. 모공이~모공이 완전 눈에 확 띄더라고요. 근데 그 세로로 늘어진 모공, 그거 아시죠? 그건 나이가 들어 피부 탄력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거라, 뭘 해도 개선이 안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제가 요거 딱 요거를 한 달을 바르고는...’
홀린 듯 리모컨을 들어 주문 버튼을 눌렀다. 한참을 하이톤의 목소리와 쫀쫀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티브이를 끈다.
‘이런다고’
혼자인 시간만큼 혼잣말이 많아졌다.
휴대폰을 열고 녹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한다. 그녀와 나이가 같았다. 그녀와 같이 반들반들한 피부를, 아니 젊음을 되찾을 수 있을 거란 10만 원만큼의 희망이 생겼던지 기분이 좋아진다.
다시 티브이를 켜고 채널을 돌리며 가끔 봐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는 아침드라마와 보는 순간은 재미있으나 별반 아무 유익이 없는 아침 프로그램들 사이를 유령처럼 떠돈다.
멍한 시간들 사이 문득 아들이 나가며, 내일 꼭 입어야 하니 빨아놓으라 했던 까만 후드티가 떠올라, 세탁물이 담긴 바구니에서 까만 옷들을 골라 꺼내 세탁기를 돌리고 보니, 정적으로 흐르던 시간 속 어느덧 찾아온 점심 끼니를 챙긴다.
냉장고를 열고, 밑반찬 중 오래된 것들을 꺼내 식탁에 놓고 냉동실 안에 소분해 놓은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일을 다니며 바쁠 땐 밑반찬을 할 여력이 없어 볶음밥, 덮밥, 국밥식으로 늘 한 그릇 음식으로 먹이던 일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 퇴직을 하고 밑반찬을 종류별로 만들어 놓았지만, 밑반찬은커녕 가족들이 집에서 밥 먹는 일조차 드물어져 버려, 냉장고 속에서 며칠을 보내다 만들어진, 보관된 순서대로 그녀의 찬이 될 뿐이었다.
설거지를 하고 종이컵을 꺼내 믹스커피를 한 잔 타서 소파에 앉았다. 하는 것도 없는데, 끼니때가 되면 꼬박꼬박 허기가 진다는 것도, 점심 후엔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는 것도 모두 20년을 넘게 한 직장 생활에서 생긴 습관이리라.
집에서 무슨 믹스커피냐며, 딸아이가 어버이날 선물로 캡슐커피머신을 사줬지만, 그녀는 굳이 종이컵까지 사와 믹스커피를 타먹기를 고집했다. 카페인에 민감해 하루 한 잔 이상 커피를 마시면 밤잠을 못 자는 그녀에게 커피머신은 그저 무용했다.
다시 티브이를 켜고 채널들 사이를 그저 떠돌아다니다 소파에 누운 채 까무룩 낮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