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고백 2

반픽션

by 하란

눈을 뜨니, 청소기를 팔던 하이톤의 목소리는 제주산 갈치조림을 먹으며 맛있다를 연발하고 있다.

‘저녁엔 갈치조림을 할까, 누가 일찍 들어오긴 하나.’

핸드폰을 열어 전화를 할까 하다, 가족단톡방을 열어 글자를 찍어 나간다.

‘저녁에 갈치조림 할 건데 일찍 오나?’

바뀌지 않는 숫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아들의 까만 후드티가 생각나 핸드폰을 놓아두고 세탁기로 향한다. 빨래를 널고 다 마른빨래를 걷어 소파로 돌아와 앉는다.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멈춘다. 산에서 혼자 자유롭게 사는 건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하며 남편이 즐겨보던 프로이다. 그래서인지 보통 출연자는 남자들인데, 오늘의 주인공은 그녀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여자이다.

‘어머니 이렇게 산에 오래 계시면 무섭지 않으세요?’

‘아유, 산에서 살려면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무서울 틈도 없어요.’


'아 그렇구나, 산에선 별 다를 것 없는 일상도 바쁠 수가 있구나’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키우고 외며느리로 일 년에 열 번이 넘어가는 제사를 챙길 땐 쪼개고 쪼개도 늘 부족하기만 한 게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매일매일 늦지도 빠지지도 않고 할당되는 시간을 감당하기가 벅차다.

부족하지 않은 건, 쓸모도 없다는 것.

삶은 ‘희소성의 원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갈치조림을 하려면 갈치가 있어야지.’

소파에서 일어나 개어 놓은 빨래를 정리해 넣어두고 선크림을 바르곤, 잠시 거울을 보다 파운데이션과 립스틱을 발랐다. 겉옷을 꺼내어 입고 에코백에 지갑을 챙겨 넣고 핸드폰을 넣으려다 카카오톡을 열어 확인한다.

약속 있음.

저녁 먹고 감.

늦음.

그녀는 가방을 다시 풀까 잠시 망설이다 휴대폰과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십 분 정도 걸리는 마트에 가는 길은 공원을 끼고 있어 그녀에게 계절의 오고 감을 알려준다. 어느새 가을의 끝인지, 잎을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니 괜스레 한기가 스민다.

최대한 천천히 걷고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는 그녀의 마트행은 그녀의 두 시간을 소비해 준다. 그리고 그 보다 세네 배 정도의 체력도.

에코백 속에서 사 온 것들을 꺼내 냉장고에 넣는다. 갈치를 꺼내 그대로 냉동실에 넣으려다 냉장실에 넣는다. 요즘 그녀는 자신이 고집스러워졌음을 느낀다.

믹스커피만큼의, 갈치만큼의 고집.

한참을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던 그녀의 옆으로 어둑어둑한 어둠이 스며드는가 싶더니 바로 붉은 기운이 훅하고 끼쳐온다. 남향의 집보다 분양가가 낮은 서향의 그녀의 아파트. 직장을 다닐 때 훅 끼쳐오는 저녁의 붉은 햇살을 마주할 일이 없었기에 문제 될 것이 없던 그녀의 합리적 선택.

태양은 뜰 때 보다 질 때 그 빛이 몇 배는 강렬한 듯했다. 지지 않겠다는, 지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갈망 때문일까. 눈을 앗아가 버릴 듯한 빛과의 조우를 견디지 못하고 일어나 커튼을 친다. 빛이 사라진 거실은 금세 어둠의 차지가 되어 버린다. 전등을 켜 다시 어둠을 몰아내고 냉장고를 열어 갈치를 꺼낸다.

아직 냉동고엔 밥이 많이 남아있지만, 그녀는 흰쌀을 꺼내 압력밥솥에 안치고 갈치를 손질한다. 그녀의 입맛대로 감자와 빨간 고추를 잔뜩 썰어 넣어 끓이자 부엌엔 금세 달큼한 비린내와 매운기가 감돈다.

‘맛있는 밥이 완성되었습니다. 잘 저어 보온해 주세요.’

그녀는 ‘네~’라고 대답하곤, 갈치조림을 식탁으로 옮기고 밥솥을 열어 하얗게 윤이 나는 밥을 그릇 가득 떠낸다.

푹 익은 감자와 빨간 국물을 떠, 흰 밥 위에 얹어 슥슥 비벼 입 안 가득 떠먹는다. 그녀의 얼굴은 발그레 해지고 이마엔 땀이 송송 맺히고 어느새 밥그릇은 바닥을 보인다.

활동량은 줄었으나 먹성은 줄지 않아, 너무도 당연히 그만큼 불어버린 살집에 몇 번이고 다이어트를 시도해 보곤 했지만, 이 순간엔 그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밥그릇 가득 밥을 채운다.

식탁을 치우고 남은 갈치조림을 잠시 보다 그대로 개수대에 비워 버린다. 설거지 거리를 그대로 둔 채로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아 번도 울린 적이 없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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