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나간 동문 모임에서 S의 소식을 들었다.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S와 가까운 선배에게 연락해 확인까지 했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사람이 아닌데.
봄처럼 살랑이다 갑자기 쌀쌀맞게 돌아선 날씨에 집에 가는 길 단골 술집으로 들어가 소주를 시키고 상념에 잠겨 들었다
S는 나의 2년 대학 선배였고, 나의 첫사랑이었다.
나름 모범생으로 여중, 여고를 나왔기에 대학생활의 로망 중 하나는 연애, 아니 봄날의 꽃같을 사랑을 하는 것이었다.
향우회 모임을 간 날 꽤나 괜찮아 보이는 선배의 동아리 호객에 홀딱 넘어간 나는 며칠 후 산악회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에 앉아 있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었던 동아리 인지라 1, 2학년 선배와 그 해 졸업한 선배들까지 함께 모여도 20명이 채 되지 않는 조촐한 자리였다. 여학생의 수가 적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아직 인싸가 아닌 시절의 숫기 없는 나였기에 시간이 흐르고 그만큼 술자리도 깊어지자 나와 몇몇은 시끌벅적한 술자리의 곁가지로 밀려나 있었다.
다행히 술자리 게임들이 이어졌고, 그때, 그리 말도 많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은 채 그저 한쪽 벽에 기대앉아 사람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다 웃음을 터트리곤 하던 선배가 게임을 제안했다.
-야 신입생들 내 삐삐번호 기억하기 시작!
이미 거나하게 술이 취한 뒤라 10자리 번호를 기억하는 게 꽤나 흥미진진한 게임이 되었던 듯하다. 무언가를 외우려 신경을 써서인지 모두 조금씩 술이 깬듯했고 그 게임을 끝으로 환영회 자리는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기숙사에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열 자리의 번호’였다. 그리고 부드럽게 웃던 선배의 웃음.
스무 살 때는 그때만의 독특한 무모함이 있다.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할 수 있는 무모함.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모르는 어린 시절의 무모함과, 퍼센트를 따져 거는 도박과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먼저인 무모함.
일주일 뒤 난 아직 잊히지 않은 그 번호로 선배 삐삐를 쳤다. 잠시 뒤 이어진 통화에서 의아해하는 선배에게 ‘선배가 좋아요.’라고 대뜸 고백을 해버렸다.
잠깐의 침묵 후에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밝고 맑은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이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종의 타이름과 같은 거절이 돌아왔다.
스무 살의 무모함과 처음 느낀 뭔지 모를 감정은 순식간에 내 주변의 모든 걸 지워버렸고, 몇 번의 연락 끝에 마주 앉은 어느 찻집에서 얼굴이 빨개진 채 앉아 있는 나를 재미 다는 듯 웃으며 바라보던 선배는
- 난 조금 있으면 군대도 갈 거고, 지금은 여자를 만날 생각이 없어.
승낙도 아니지만 거절도 아닌 그의 말이 그저 좋았던 나는 지금 생각하면 스토커로 신고를 당했어도 무방 했겠다 싶게 그를 해바라기 하기 시작했다.
학교 근처, 졸업한 선배들이 연수를 받던 기숙사에 발이 닳게 찾아간 덕에, 동기와 바로 위 학년의 선배들보단 졸업한 선배들에게 난 S를 쫓아다니는 후배로 유명해졌고, 선배의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조바심에 어느 하루 술에 잔뜩 취해 기숙사를 들어선 날, 어느 누군가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S야 H이 왔다!
꽤 늦은 시간이라 기숙사에 있던 선배들의 놀림 섞인 환호가 이어졌고, 이어 나온 선배는 가만히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술기운과 애달음에 울던 울음이 잦아지자, 선배는 예의 그 조용한 목소리로 여긴 어디고, 이리로 가면 어디가나온다는 설명을 낮고 조용하고 그리고 안심이 되는 목소리로 가만가만 얘기하며 내 손을 이끌었다. 이미 자정이 지나 새벽으로 가는 어느 시간을 그렇게 걷고 걷다 소나무가 가득 우거진 어느 공원 벤치에 이르러 보름이었던지 둥글고 큰 달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봄밤 이슬의 찬기운이 느껴질 즈음 입고 있던 점퍼를 내게 벗어 걸쳐주곤 올 때처럼 가만히 내 손을 잡고 나를 데려다 주곤 돌아섰다.
-쉬고 며칠 지나 얘기하자, 술은 그렇게 많이 마시지 말고.
며칠 뒤 마주 앉은 내게 그는 두 달 후면 군대를 간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힘들 것 같다고 얘기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나를 가만히 보다 잠시 망설이듯 내게 물었다.
그런데, 확실하게 얘기 안 해주고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가기 전까지 가끔 만나도 되겠냐고
나는 나오려던 울음을 삼키곤, 크게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트라고 할 수도 없게 동아리의 산행, 동아리 술자리 그리고 가끔의 산책이 이어졌다.
산을 갈 때면 무심한 듯 하지만 어느새 뒤따라와
-발을 그렇게 디디면 위험해, 이렇게 나무 둥치가 있으면 그쪽으로 디뎌야 안정적이지.
-신발끈은 이렇게 묶어야 안 풀려.
하고 얘기해 주었고 험한 길에서 다른 여학생들이 의례 도움을 받는 것과는 달리, '넌 잘하잖아' 하며 놀리듯 말했지만 내가 다 올라설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며 내 뒤를 지켜봐 주던 눈길이 느껴졌다.
대학 생활 후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인간관계에 서툴러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전화한 밤이면 가만히 이사야 구절을 읊어 주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참으로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교회를 다니지도 않건만 그 조용하지고 단단한 목소리를 들으면 맘은 금세 보드랍게 안정되곤 했다.
어느 하루, 늘 나의 연락에 응해주던 것과는 달리 먼저 연락이 왔다.
군대 간 선배 면회 갈 건데, 같이 갈래?
다음 날 만나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해 시외버스를 타고 어느 군부대에서 면회를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때를 생각하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인데, 내가 간 곳이 어디였는지, 심지어 어느 터미널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출발시간과 갈아탈 버스 시간, 갈아탈 곳 면회를 요청하는 방법, 돌아오는 버스 시간까지 꼼꼼히 적힌 수첩의 단정한 글씨.
작은 키였건만 그는 늘 커 보였고 그런 그를 믿고 그저 그의 등만 바라보며 걸었기 때문이리라.
그의 옆이라면 나는 그저 편안히 숨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안심을 내게 주었다.
부대 앞 버스를 기다리며 개울에서 수첩을 찢어 만든 종이배를 띄우면 맑게 웃던 웃음이 좋았고,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내 머리를 어깨에 가만히 기대 주던 그 손길이 좋았다.
이주일 뒤 S는 군대를 가고 어찌어찌 헤어짐을 겪고 제대 후 다시 만나 진짜 연애를 하고 아프게 헤어지기도 했지만 내게 기억되는 첫사랑은 다만 스무 살 그때의 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