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탄수화물이 주는 행복

나의 막장 다이어트라마

by 하란

한 달이 넘게 허리띠를 풀고 먹어재꼈더니 그야말로 위대해져, 먹는 양을 바로 줄이기는 어려울 듯해 첫 시작은 키토제닉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6년 전 직장에서 동료들과 살 빼기 내기를 했을 때 키토제닉, 즉 고지방 저탄수 다이어트로 당당히 1등을 한 적이 있다. 그땐 회식 때 치킨도 안 먹고 맥주만 마실 정도로 철저히 탄수화물을 배제하고 독하게 했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력도 체력도 없다.

키토제닉의 장점은 단연 배고프지 않게 감량의 효과도 좋다는 것. 난 워낙 튼튼해 두통이나 무기력 등 키토제니의 초기 부작용으로 꼽히는 증상도 없었다.

단점은,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

-담배 끊은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난 거기 키토제닉 계속하는 사람도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수화물의 유혹은 생각보다 강하다. 그리고 키토제닉에서 탄수화물의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순식간에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어쨌든 늘어난 식욕을 다이어트모드로 돌리기 위해 5일간은 키토제닉을 하는 게 좋겠다 판단하고, 어제의 숙취해소를 위해 아점으로 삼겹살을 구웠다. 수분 보충을 위해 맥주도 한 캔.

-다이어트를 위해 음주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맥주는 내겐 다만 음료다.

아 뭔가 잘 될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과 뿌듯함.

볼 일을 보고 저녁엔 새로 생긴 키토제닉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에 도착한 순간 복병을 마주쳤다.

주방 식탁 위에 고고한 자태로 날 바라보고 있는 이삭토스트.

망삘이 살짝 느껴지는 순간, 방에서 나온 아들이 웬일로 다정히 얘기한다.

-내가 시킨 건데, 엄마 잡숴

뭘 양보할 애가 아닌데 저렇게 얘기한다는 건 먹을 만큼 먹어 이젠 안 먹겠단 소리. 마지막 의지를 그러모아 딸에게 묻는다.

-토스트 먹어~

-안 먹어

그냥 두면 음식물쓰레기행이다.

요샌 버리기 아까워 먹는 건 바보라지만, 살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남은 음식을 버린다는 건 여러모로 쉽지 않다. 주부들의 다이어트가 힘든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토스트를 베어 문다, 이삭토스트 특유의 달콤한 소스와 햄, 계란, 치즈의 콜라보가 주는 고소함. 그리고 이 모든 걸 넉넉히 품어주는 식빵의 맛.

일단은 행복해지는 맛. 그것이 바로 탄수화물의 맛!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해야겠다고 맘먹는다.

'작심삼일' '다이어트는 내일부터'의 주범은 '이미'라는 판도라의 상자

'이미 '라는 건, 결심이라는 힘든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유혹의 손길인 것이다.

저녁 장을 봐오는 길,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궁금했던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를 사 와 깔끔히 해치운다.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 문득 아직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일 점심까지 먹지 않으면 자연스레 18시간 간헐적 단식이 되는 셈이니.

-그래 그래 아직 괜찮아

이런저런 집안일을 마치고 책을 들고 식탁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본다.

책을 잠깐 읽고 한참을 별 의미 없는 쇼츠 영상과 인별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어느덧 열 시.

오랜 직장 생활과 그에 따른 늦은 밤의 음주 문화가 뼛속 깊이 새겨진 내게 가장 식욕이 왕성한 시간이다.

-이 식욕을 참기 어려워 차라리 첫끼를 밤 12시에 해볼까 하는 요상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27분쯤의 인내 끝에 햇반을 돌리고 참치캔을 따고, 김과 김치를 꺼낸다.

역시나 일단은 행복해진다.

-아 역시 한국인은 밥이지. 다이어트는 똑 떨어지게 3월부터 하자.

부른 배를 두드리며 바로 눕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고 읽고 있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고 소파로 갔다.

-허기가 강도처럼 나를 덮치는구나. 숲과 늪지대에서 허기가 나를 덮치다니. 그것도 깊은 한밤중에.

한밤중의 허기란 어이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짜라투스트라는 나와는 다르게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간헐적 단식이었다.

흠, 한 마리의 짐승처럼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먹어대며 철학책을 읽고 있다니. 묘하게 해학적이다.

순간의 정신차림.

이미라는 유혹엔 넘어갔지만 맘을 다잡고 오늘을 나의 다이어트 1일로 기록하기로 결심한다.

이미 폭망해 버린, 하지만 탄수화물로 행복했던 다이어트 1일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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