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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란 Mar 16. 2023

내게 좋은 사람

어느 하루의 기록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동생을 만났다.

아직은 바람이 찬 이른 봄의 프리지어를 안겨주고,

아직 피지 않은 꽃송이가 벼이삭 같다며 함께 웃고,

횡단보도를 건너 서로를 꼭 안아주곤 헤어진다.


서로의 생이 겹치는 일이 절대 없을 것 같던 둘인데, 책이라는 하나의 점에서 만나 글이라는 을 이어오고 있다.

같은 섬 안에 살고 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커피를 마시며 늘 아쉬운 시간을 보낸다.

만나면 늘 서로에게 선물 보따리를 안겨주기 바쁘고, 두 시간 세 시간 수다를 떨어도 늘 헤어짐이 아쉬운 사람이다.

처음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고 헤어질 때 날 꼭 안아주던 손길이 무척이나 어색했는데 이젠 나도 좋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때면 그이에게서 전수받은 따뜻함을 꼭 안은 두 손길로 전해준다.


예쁜 동생을 만나기 며칠 전에는 다닌지 일 년쯤 된 마사지숍을 오랜만에 찾았다. 두 손으로 매만지는 사람의 아픔을 같이 느끼고, 돈을 버는 직업이지만 손님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좋다는 분. 단정한 자세와 맑은 얼굴에선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마사지를 받는 동안 나도 모르게 하는 하소연에 연륜이 가득 묻어나는 어른의 말씀을 과하지 않게 해주시곤 한다.

한 동안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다 보니 시간보단 맘의 여유 부족으로 아주 추운 겨울 한 시기를 빼곤 꾸준히 하던 아침 운동을 한 두 달 거르고 있었는데, 원장님께 마사지를 받으며 문득,

-아, 내일 운동을 가야겠구나 ~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이 건강해지면 마음이 건강해져서일까? 우울했던 어느때 신경정신과 대신 마사지숍을 찾은 날이면 결코 약이 줄 수 없는 건강한 마음이 깃들어 있고, 고민이 가득했던 날엔 어느새 지난 고민은 사라지고 앞으로의 할 일이 생각나곤 하는 것이다.


예전엔 좋은 사람과 안 좋은 사람의 기준이라는 것이, 진실, 의리, 진심 같은 일종의 객관적인 것에 기준했었는데, 나름 사람들과의 관계의 바다에서 이런저런 풍랑과 파고를 겪다 보니 내가 이어가야 할 관계란 주관적인 기준의 것이여야겠다 싶다.

좋은 사람이라도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어쩌면 다른 사람 기준에서 다소 좋지 않은 사람이라도 나와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이어가야 할 인연은 그저 '내게' 좋은 사람이면 된다는 것.

-이런 생각은 나와 멀어진 인연이 나쁜 사람이어야 하는, 불편한 당위에서도 날 해방시킨다. 단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그리고 나와 맞는 사람인지 여부를 알아내는 나의 가장 좋은 방법은 만나고 헤어진 뒤의 나를 가만히 살피면 알 수 있다.

분명 즐거운 시간을 보냈건만 헤어지고 나면 왜인지 피로하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섬의 동생과 서울의 원장님처럼 만나고 나면 편안하고 밝은 기분이 들고 그에서 파생되는 것이 분명한 의욕이 퐁퐁 샘솟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혹은,

어쩌면,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란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내게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만이 있을 뿐일지도.

戀書

벼이삭에 꽃은 활짝 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생에

너와 내가 빚어갈 그릇,

그리고

그 안에 담길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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