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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란 May 14. 2023

영화보다 영화 같은

어느 하루의 기록

오랜만에 영화관엘 갔다.

앞자리엔 중년의 커플이 앉으셨는데,  영화 시작 전부터 남자분이 이야기를 계속 하시더니 영화가 시작됐는데도 멈춰지지 않는다.

집 거실에서 영화를 보는 듯, 이런저런 첨삭이 계속되고,

옆자리 여자분이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가시지만, 잠시 잠깐 그때뿐.

짜증이 울컥 밀려와 앞자리 의자를 똑똑 두드린다.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다시 실시간 영화 감상평과 추임새가 이어진다.

강적이다!


일종의 포기를 하고 짜증스러운 맘으로 영화를 보는데 화장실을 가시는지 일어나 나갔다 한참 후 들어오는 남자분의 손에 까만 봉지가 들려져 있다.

부스럭대며 봉지를 열어 영화관 매점에선 팔지 않을 듯한 음료와 과자를 꺼내 여자분에게 건넨다.

'아 정말 왜 이럴까~'

창피하다는 듯 다소 강한 어조의 타박이 돌아온다.

머쓱한 듯 잠시 있던 남자분의 한 마디.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런 것 밖에 없어서'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뚫고 지나가고

영화관의 진상 커플은 이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니 중년을 넘어 노년에 가까운 커플이었고, 부부라기 보단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신 것인지 남자분의 시선은 영화스크린보단 옆자리 여자분에게로 더 많이 향한다.

좋아해서,

그래서,

한 마디라도 더 걸고 싶고

그렇게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보고 싶고.

이제는 까마득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서툰 첫사랑의 설렘이 느껴진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내가 할 줄 아는 건 모두 해주고 싶은 마음이리라.


어둠 속 커다란 스크린은 배경이 되고,

뭔지 모를 애틋함에 눈물이 슬쩍 맺히는 또 다른 한 편의 영화가 눈앞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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