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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란 Sep 30. 2023

네 삶도 참 좋아 보이는구나

일상단상

딸아이와 의기투합해 나선 한밤의 편의점행.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마주친 이.

깐의 이런저런 인사가 이어진다.

대학동기이자, 꽤 오랜 시간을 가깝게 지내고

그리 좋지 않게 멀어진 이.

다행히 애정도 미움도 옅어져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지나쳤다.

하룻밤이 지나고, 못내 찜찜한 감정의 찌꺼기가 부대껴

내 맘을 가만히 살핀다.

무엇이 불편한가.

고요한 아침 산책길의 생각 끝, 실마리가 잡혔다.

위아래로 날 훑어보던 눈.

'머리가 노랗네~.'

'?????'

마치 사감선생에게 걸린 불량학생 같은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별꼴이야'

확인한 이상 별 것 아닐 감정을 툭툭 털어버린다.

네가 진짜 내 노란 머리를 못 봤구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꽤 오른 시간 알고 지낸 어른에게 전화가 왔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어른이 얘기한다.

'요새는 뭐 하고 사시나'

'부여  밤농장에서 일합니다.'

'왜 그러고 사나. 이젠 좀 정착을 해야지~'

'?????'


20여 년의 공무원 생활로 아직도 지인의 큰 퍼센트를 차지하는 건 공무원이거나 공무원을 퇴직한 이들이고 퇴직한 이들의 90프로가 이전 일의 경로상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기에 그들의 눈에 나는 일종의 '불량학생'으로 보일터.

처음엔 그러한 시선에 열심히  내 삶의 철학을 피력했지만, 그야말로 일말의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을 경험하며

'흐흥, 그러신가요.'

하고 말아 버린다.


그러다 문득,

모두 자신의 삶에 불안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맞아. 내가 사는 방식이 맞아!'

라고 견고한 벽을 만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건 아닌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내 삶과 다른 삶을 사는 이를 인정하면 내 삶을 부정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딱히 대상이 그 누구랄 것도 없는 연민이 생긴다.


앞으론, 내 살아가는 방식을 꼬아보거나 왜 자신처럼 살지 않냐고 하는 이를 만나면

'그래, 네 삶도 참 좋아 보이는구나.'

라고 부러워해주고 싶다.

그럼, 그런 내 삶도 꽤나 좋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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