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이지만 손님입니다.

가족에게 아빠는, 아빠에게 가족은

by 하랑

언제부터일까? 첫째는 아빠 출근할 때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빠, 내일 또 오세요.”

“아빠, 또 놀러 오세요.”

“아빠, 엄마 집에 또 놀러 오세요.”


이 아이에게 아빠는 같이 사는 사람,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이기보다 손님인가 보다. 늘 “아빠는 언제 와?” 하며, 아빠가 언제 오는지 물어본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나 삼촌이 “언제 놀러 오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뉘앙스이다.


아이에게 아빠는 늘 아침에만 보는 사람이다. 아빠가 오는 시간인 저녁? 아니 밤에는 아이들이 잘 시간이다. 그래서 아빠는 늘 자는 모습, 아이들의 예쁜 모습만 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아이는 부랴부랴 떠나는 아빠를 보는 것이 하루에 아빠를 대면하는 시간 전부이다. 보통 평일은 그러하다. 그러다 보니 아빠는 이 집에 잠깐씩 출연하는 엑스트라 같은 존재이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한국이란 나라는 참 이런 모습이 익숙하다. (다른 많은 가정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모 CF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을 똑같이 연출하여 아빠들 힘내라는 메시지를 담아 연출한 경우도 있었다.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정작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아빠. (요즘은 아빠 말고도 열심히 일하는 엄마도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참 안타깝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요즘은 ‘너무 화가 난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이렇게 시대가 변하지 않았을까? IT가 그렇게 발전하고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로봇이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이 시대에. 일보다 삶의 균형을 추구하며 질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 시대에. 왜 우리의 삶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것일까? 나의 시대 또한 이렇게 살고 있는가 보면 세상은 아직 많이 멀었나 싶다.


나의 어린 시절에 아빠는 함께하는 가족이기보다 손님이었다. 아빠는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하여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였다. 우리와 함께 섞여 있는 것이 그저 어색하다. 곧 아빠는 은퇴를 앞두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시기가 오지만 우린 함께 하는 것이 어색하여 함께 할 수 없다.


이렇게 서로가 어색한 이유는 우리와 아빠는 대화 같은 대화를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화한다는 건 참으로 어렵다. 단순하게 성적이 어떤가? 학교생활은 어떠한가? 를 묻는 말은 대화가 될 수 없다. 그러한 대화는 대화보다는 취조에 가깝다. 진정한 대화라면 서로가 즐거워야 한다. 그럼 서로를 잘 알아야 하고, 서로에 대해 관심이 많아야 한다. 결국 관심이 커지려면 부모가 심적으로 여유가 생겨야 한다. 결국 여유는 시간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그래,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는데 많은 고민과 에너지를 쏟는다. 개인의 추측과 방법으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워낙 정보가 많다 보니 이것저것 듣고 배워서 좀 더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애를 쓴다. 그러하다 보니 자연스레 아빠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아빠 또한 함께 육아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니 적어도 우리 집의 현실은 옛날의 우리 아빠와 지금의 우리 남편의 모습이 크게 다를 것 없는 상황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아빠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함을 계속 인지시키는 나와 조금씩 미세하지만, 시간을 할애하며 애쓰는 남편이 있다는 것.


엄마 시대 때 보다, 나의 시대 때는 많은 것은 변했다. 하지만 아직 가정을 이루는 삶에서는 과거의 시대에 많이 머물고 있다. 아이를 편히 낳고, 잘 기를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아이가 부모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야 한다. 과연 이 사회는 그것을 얼마나 허용해 줄 수 있을까? 늘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만 품고 키우기에는 개인의 부담이 너무 크다.


과연 언제까지 “예전에도 다 그러고 살았어.”라는 말로 이 상황을 무마시킬 수 있을까?


우리 아이에게 아빠를 돌려주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Ready~ 리액션!